노대통령 '전효숙 백기 투항'…권력누수 서곡?

입력 2006-11-28 10:43:36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전격적으로 '전효숙 카드'를 접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요청을 받고 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형식이지만 노 대통령이 백기 투항한 것으로 보는 눈이 지배적이다. 26일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의했다가 거절당한지 하루만이다.

◆권력누수 서곡일까?

노 대통령의 임기말 권력 누수 현상(레임덕)이 조기 가시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해 한나라당의 반대와 열린우리당의 반발을 사고 있는 양상이어서 더욱 그렇다.

노 대통령은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하면서 제안의 진정성을 사기 위해 직접 발표하려 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참모진의 반대로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발표했다. 국회에 묶여 있는 로스쿨 법안과 국방 개혁안 등 국가 개혁입법의 교착 상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전효숙 카드부터 먼저 접으면 정치협상회의에 응할 수 있다.'(김형오 원내대표)는 뉘앙스를 풍겼다. 강재섭 대표도 "대통령이 처리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면 순식간에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같은 한나라당의 반대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이 바로 강 대표에게 전화해 "재고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터져나온 것이 전효숙 카드 철회다. KBS정연주 사장 지명철회까지 거론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일단 성의를 보인 측면이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정치협상 제안의 취지와 정신은 유효하다."고 문을 열어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전효숙 카드 철회와 정치협상회의는 별개'(나경원 대변인)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의 사석(死石) 작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반발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인 김근태 의장이 화를 내고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면담하자고 할 때 만나주지 않고 한마디 의논도 없이 정치협상을 제안한 것이 표면적 이유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이 정치협상을 제의하기 직전 이병완 실장에게 "당·정·청이 한 몸으로 갈지, 중립내각으로 갈지 판단할 시점이 됐다."고 노 대통령에게 사실상 최후 통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과 생각이 많이 다른 김한길 원내대표는 기회있을 때마다 청와대에 각을 세워왔다. 여당 지도부가 이렇다보니 당 상황이 녹록치 않다. 노 대통령 직계는 한 때 당의 핵심이었으나 지금은 소수파로 전락해 있다.

◆당적 포기, 대통령직까지도?

노 대통령은 28일 당적포기와 대통령 임기 중단을 언급했다.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에 이어 전효숙 카드까지 철회했으나 정국을 정상화하려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자리에서 "대통령 인사권이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대단히 어렵다."며 "현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2가지 뿐"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당적의 경우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결단'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대통령 임기중단은 "그럴 수도 있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힌 것일 뿐 그럴 의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점점 고독해지고 있는 노 대통령의 다음 승부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 공세는 계속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 대표는 28일 원내 대책회의에서"100일간 끌어왔던 전효숙 씨 사건은 없던 일로 되었지만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며 "레임덕에 빠진 이 정권이 앞으로 1년여 간을 잘 버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이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며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잘못된 인사를 모두 바로 잡아야 한다."고 공격했다. 한나라당이 대표적인 코드 인사로 비난하고 있는 이재정 통일부장관 후보자,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정연주 KBS사장 등 3명에 대한 인사를 철회하라는 요구이다.

또한 전 후보자 지명철회의 법적 근거를 제시한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노 대통령이 사법부 수장까지 코드인사를 하려는 것을 국회가 막아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꼬여있는 정국을 풀기 위해 청와대가 태도변화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며 "전 후보자 지명철회가 주요 민생법안 처리에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