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 대구에 온 콩쥐 팥쥐

입력 2006-11-28 07:08:31

콩쥐가 대구에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눈물을 나눠주러 왔습니다. 팥쥐도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에다 심술을 가득 담고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왔습니다. 긴 수염을 휘날리는 원님의 팔자걸음을 뒤로 선녀와 마을 사람들이 따르고 황소도 볏가마니를 등에 진채 뒤뚱뒤뚱 걸어왔습니다. 두꺼비도 눈을 껌벅이며 기어오고 참새들도 떼를 지어 날아왔습니다. 동대구역에서 내린 일행은 택시를 나누어 타고 무지개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극장 안은 인형극을 보러 온 아이들로 꽉 들어찼습니다. 징 소리에 막이 열리고 무대 위에 옛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지자 아이들이 일제히 환성을 질렀습니다. 극장 안이 터져 나갈듯한 박수소리에 산 밭둑의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콩쥐는 신이 나서 나무호미로 돌밭을 쪼아대며 눈물을 찍찍 짰습니다. 황소도 일찍 뛰쳐나와 콩쥐를 거들었습니다. 팥쥐와 팥쥐 엄마도 여느 때보다 더 크고 앙칼진 목소리로 콩쥐를 들볶았습니다.

벼를 찧던 콩쥐가 마당에 퍼질러 앉아 살갗이 다 벗겨져 피가 흐르는 손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펑펑 흘리자 참새들이 우르르 날아와 재조갈재조갈 부지런한 입놀림으로 벼를 쪼아냈습니다. 물동이에서 넘친 물에 비 맞은 생쥐꼴로 훌쩍훌쩍 콧물까지 흘리며 콩쥐는 우물길을 부지런히 오갔으며, 두꺼비는 또 눈알이 쏟아지도록 용을 쓰며 깨진 물독을 받쳤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들떠서 야단법석을 떨자 감독님은 '제발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 고함을 쳐대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지만 이들의 신명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무대 뒤로 몰려들었습니다. 한 아이가 퇴장해 온 참새의 목을 비틀어 보았습니다. 또 한 아이가 차례를 기다리던 원님의 수염을 잡아당겨보았습니다. 또 한 아이가 팥쥐의 다리를 뜯어보았습니다. 또 한 아이가 선녀의 치마를 들춰보았습니다. '에이, 별것도 아니네 뭐. 헝겊이냐 헝겊.', '헝겊 속에 솜이 들어 있어.', '이렇게 줄을 당겨 움직이는 구나.', '팬티도 안 입었네. 히히해해호호깔깔깔…'

무대 뒤가 온통 수라장으로 바뀌면서 관람석은 텅 비어갔습니다. 너무도 야속한 아이들의 모습에 콩쥐는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화가 난 원님도 반쯤 떨어져나간 수염을 달랑거리며 마구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허둥지둥 콩쥐의 결혼식을 올리고 난 일행은 서둘러 무대에서 내려와 대구를 떠났습니다. 꺼이꺼이 울면서, 이들이 떠난 극장가로 어둠이 쌓이고 저녁 내내 바람이 몹시도 불었습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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