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을 뒤지다 사람을 피해 황급히 도망가는 개를 보았다. 한번씩 그런 생각을 해본다. '저런 거리의 동물들에게도 삶의 질은 필요할까?' 적어도 생명을 유지하고, 짝을 찾고, 때가 되면 새끼를 낳고 목숨을 이어 나가는 것 이상 중요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사실 인간도 전란중이거나, 절대적 빈곤에 처해 있을 땐 삶의 질 따위를 따질 수 없다. 삶의 질이란 최소한 이런 절대적 곤란에서 벗어난 뒤라야 따질 수 있는 문제다. 요즘 너도 나도 삶의 질을 따진다. 집은 몇 평에 살아야 하고, 차는 몇CC를 타야하고, 외식은 한 달에 몇 번을 해야 하며, 옷은 어떤 상표를 입는가....
삶의 질은 어떻게 하면 높아질까? 된장국을 맛있는 크림수프로, 버스대신 자가용으로, 가요무대 시청을 오페라비디오 감상으로 바꾸면 가능해질까? 도대체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란 무엇인가? 재산의 많고 적음, 혹은 교육수준의 높낮이, 아니면 그것과는 관계없는 고상한 취미의 유무인가?
그런데 이런 질과 관련되는 문제의 중요한 척도는 '감성을 수반하는 입맛과 안목'이다. 재산이 많고 적음은 계산기를 두드리면 나오는 것이고, 교육수준은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나를 보면 대충 안다. 하지만 음식 하나를 놓고 맛과 재료의 질감과 온도·향기·빛깔·디스플레이를 감미(感味)하거나, 바이올린의 음색을 생각하고, 오랜 건물의 기둥 하나를 놓고 시간과 역사와 인간의 삶을 유추하는 사람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명품에 수입차에 고급 아파트로 도배를 하고 주말에는 남들 따라 음악회를 가더라도, 그런 삶의 주인공이 다만 자신이 가진 부(富)에 흡족해하며 그에 걸맞는 상류층의 행동 기대양식(期待樣式)을 흉내내고 있다면 삶의 질은 먼 일이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은 늘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기고 감상하고 대화한다. 그가 비록 가난해서 값싼 자판기커피의 향을 마시고, 음악회의 로얄석 대신 학생석을 구입할 지라도....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 것은 오랜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높은 안목과 감성이 있다면 의외로 즐길거리는 풍부해진다. 나아가 이런 안목으로 우리 주변의 예술을 찾아서 즐기는 사람은 이미 그 삶이 '예술'인 셈이다.
남우선 대구MBC PD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