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아프간·베트남 등 분쟁지 주력 화기로
웬만한 나라에선 닭 한 마리 값이면 살 수 있고, 이라크에서 12세 남자아이면 누구나 눈 감고도 분해·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면서도, 매년 전 세계적으로 25만 명을 죽이는 최고의 대량파괴무기(WMD), AK47 자동소총.
워싱턴 포스트는 26일 미국의 이라크전 참전 일수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일수를 넘은 것을 계기로, "AK47으로 두 전쟁이 영원히 맺어질 것"이라며 이 자동소총의 전 세계적인 확산과 현대 각종 분쟁의 역사 간 관계를 훑었다.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1천348일 만에 전쟁을 끝냈다.
지난 2003년 3월 20일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전은 침공 40일 만인 5월 1일 바그다드 함락에도 불구하고 종파 간 내전 양상으로 비화하면서 계속되고 있다.
1991년 제1차 걸프전 때 연합군이 사담 후세인의 공군과 스커드 미사일과 탱크부대를 궤멸시키긴 했지만, 후세인은 AK47을 포함해 소형무기들은 유지할 수 있었다.
2003년 '이라크자유작전'으로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무기고에 있던 수백만 정의 AK47 등 소화기 상당수가 후세인 정권 충성분자들이나 미군의 점령에 반대하는 세력의 손에 들어갔다.
미국의 군사전략가들은 당초 이들 소화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저항세력은 이를 사용해 도시 게릴라 지구전을 시작했다.
미국이 9·11 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 직전, 오사마 빈 라덴이 서방 측에 보복을 경고한 비디오 테이프에서도 빈 라덴의 옆자리나 뒤에는 AK47이 있었다.
AK47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에 맞선 저항세력과 테러리스트들의 주무기로 사용되면서 이들에겐 반(反)제국주의의 상징물이 됐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군에 대항하는 알 카에다와 부족집단이 사용하는 AK47 가운데 상당수는 80년대 미 CIA가 소련군에 맞서도록 중국에서 사들여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히딘에게 공급했던 것들이다.
나중에 미 의회 청문회에서 밝혀지기로는, 당시 무자히딘에 지원된 액수는 CIA 채널만 해도 총 20억 달러에 이른다.
9·11 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첫 미군 전사자도 AK47에 숨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특히 그 후 소련의 붕괴가 AK47의 전 세계적인 확산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소련 붕괴 후에는 소련권 국가들이 재고 무기를 경매하는 가운데 AK47이 바겐세일로 아프리카 전역에 퍼져 라이베리아, 르완다,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등지에서 작고 단기간에 끝날 분쟁을 오래 끌고 큰 분쟁으로 만들었다.
남미에선 AK47이 마약단과 반정부 반군들의 손에 들어갔으며, CIA는 8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니카라과의 친소 산디니스타 정부와 싸우는 콘트라 반군에 무기를 공급했다.
AK 자동소총은 엘 살바도르 내전을 격화시켰고 콜롬비아의 정치·마약 폭력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했다.
AK47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2차 대전 때 조국으로부터 나치 독일군을 물리치는 최고의 자동화기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후 1947년 탄생했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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