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평 농사 50만원 준다니…" 배추값 폭락 '시름의 계절'

입력 2006-11-24 10:41:00

"자식 같이 키운 농작물을 밭에서 고스란히 썩혀야 된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23일 오후 고랭지 채소단지가 있는 봉화 춘양면 우구치리 마을은 채소값 폭락으로 실의에 빠진 농민들의 한숨소리로 가득했다.

매년 이맘때면 대도시에서 몰려든 장사꾼과 수확 작업을 펼치는 인부, 운반차량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으나 올해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광활하게 펼쳐진 채소밭엔 고랑을 가득 채운 배추와 무가 서리에 젖어 희뿌연 색으로 변한 채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찬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은 농촌의 풍경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5천 평 배추 농사를 짓는다는 신춘자(67·여) 씨는 "50만 원 준다기에 그냥 다 버렸어요. 자식 돌보듯 애지중지 키웠는데 하늘도 무심하지···. 어차피 썩어 자빠질거, (기자분) 가는 길에 캐서 가져가요."라며 망연자실해 했다.

"공급 과잉도 문제지만 중국산 김치 수입이 늘어난 것이 더 문제라."

마을 이장 김호규(45) 씨는 "예전 같으면 대구나 서울에 사는 친인척들에게 김장 김치하라고 보내주며 인심이라도 썼는데 올해는 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조차 않네요."라며 중국산 김치를 겨냥했다.

김 이장은 또 "밭이라도 비워야 내년 농사를 지을 것 아닙니까? 그냥 공짜로 뽑아 가라고 해도 한두 포기 입맛에 맞는 것 골라가지 아예 손도 안됩니다. 배추를 그냥 밭에 방치하면 비닐을 못 걷게돼 내년 농사 준비에 차질이 생기는데…."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가을배추를 계약 재배한 상인들도 죽을 맛이다.

김성대(56·서울시 영등포구) 씨는 "계약금이나 건지기 위해 왔는데…. 시장에서 소매라도 하기 위해 가족들과 화물차를 끌고 직접 배추를 수확하러 왔는데 이미 서리를 맞아 건질 게 없네요."라며 걱정을 늘어 놓았다.

박만우 봉화군 농업기술센터 농업지원과장은 "가을 배추가 공급 과잉인데다 중국산 김치수입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이 가격 폭락의 원인"이라며 "지난 10월 말까지 김치 수입액은 7천3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4% 늘었고 수입량도 14만 7천t으로 53%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산 배추의 산지 가격은 아예 매길수 없는 상황. 서울 가락동 농산물 시장 가격은 1㎏에 2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50원의 57%에 그치고 있다.

한편 봉화군은 배추·무 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배 농가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공직자 배추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는 한편 도시민을 대상으로 김장 담그기 캠페인을 펴고 있다.

봉화·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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