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페라 '라 보엠'을 보기 위해 대구시민회관을 찾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공연 중간에 나와야 했다. '오페라 내용이 어떻다.'라고 평가하기에 내 지식이 짧아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꼭 따라 나서겠다는 아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데리고 간 것과 자막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안경을 챙기지 못한 것, 그리고 로얄석 티켓으로 2층에 자리를 배정받을 것이라 생각 못한 것, 결국 그 세 가지 실수 때문에 15분간 주는 휴식시간에 나와 버린 것이다.
사실 공연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와인병이 기분을 거슬리게 했다. 팸플릿 파는 곳에 3천 원이라고 적혀 있는 와인 판매대. 모든 관객들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6만 원 정도 되는 티켓값을 지불한 관객들에게 주는 레드 와인.
왜 와인을 줄까? 출출함이 공연 관람을 방해할 것 같아 대구시민회관 앞에서 어묵꼬치를 먹고 들어온 나의 자격지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와인병은 참 생뚱맞았다. 11월, 초겨울로 들어가는데 오페라 공연에 앞서 한 잔씩 먹는 레드 와인. 차라리 차게 마시는 화이트 와인이었다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무튼 아이러니한 코미디다 싶은 생각에 웃으며 봤다.
'라 보엠'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한 뒤 공연장에 갔었다. 그리고 자리한 2층석. 안경탓을 하며 음악만 듣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작부터 조용한 데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리아가 끝나고 나자 '브라보'에 이어 터져나오는 박수소리에 살짝 끊어지는 듯한 공연. '묻지도 마! 졸지도 마!'라고 윽박지른 탓에 데리고 간 아이는 결국 고개를 떨군다. '아! 큰일이다. 축농증으로 코를 고는 아이인데….'
결국 쉬는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그동안 2층에서 벌어진 광경은 난리도 아니었다.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아이를 말리지도 않는 보호자, 여기저기서 들리는 성능 좋은 핸드폰 소리. 어떤 가족은 쉬는 시간도 아닌데 네 명이 동시에 일어나 씩씩하게 나가 버렸다.
초대권을 받은 나는 티켓에 좌석 번호가 없음을 알았다. 큰 공연에서 좌석번호가 없다는 것은 초대권이 많이 뿌려졌다는 말이다. 초대권은 공연장 앞에서 좌석표로 교환해야 한다. 초대석 자리가 빌 것을 대비한 주최 측의 배려(?) 때문이다. 이런 공연에서 관객들이 힘든 것은 에티켓 없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받는 피해이다.
소극장 공연에서도 핸드폰은 울린다. 요즘은 진행을 맡은 극단 단원들이 공연에티켓에 대한 설명을 콩트로 만들어 관객들을 교육을 시킨 뒤 공연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 이상의 공연에서 핸드폰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중요한 전화를 받을 일이 있다면 공연을 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공연 중 불가피한 일로 중간에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남은 사람들을 배려해서 최대한 몸을 낮추고 미안하게 나가 주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배짱은 어찌나 좋은지 아주 씩씩하다. 최근 있었던 대구시립무용단 공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공연에서 조명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 관객이 10분 이상 핸드폰 불빛으로 팸플릿을 읽고 있었다. 안내 도우미의 제지로 팸플릿 읽기를 그만 두었지만 그 관객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불빛. 성능이 너무 좋은 핸드폰이 탈이다.
결국 두 공연 모두 같이 간 일행 여섯 명의 공연리뷰는 공연의 내용보다는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 대한 불만이었다. 투덜거리며 나오는데 누군가 말한다. "내가 공연한 연극은 한 번도 핸드폰이 울리지 않았어." 내가 돌아보니 그녀가 웃는다. 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그녀는 "들어갈 때 일일이 검사했잖아." 역시 대한민국이다. 예술은 멀고 자유는 더 멀고…. 그렇지만 핸드폰은 정말 발달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이소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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