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10월 예나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한 나폴레옹은 베를린 입성에 성공한다. 같은 해 8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숨을 끊은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11월 21일 나폴레옹은 칙령을 내린다. '베를린칙령' 혹은 '대륙봉쇄령'이라고 불리는 조치였다.
전문 8조에 본문 11조로 된 칙령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영향권 밖에 있던 영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위한 조치였다. 나폴레옹은 1803년 이집트 상륙작전에 실패하고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대패한 바 있다. 이후 나폴레옹은 영국에 대한 군사작전을 포기하고 영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택한다.
칙령에는 영국과의 통상 및 통신을 금지하고, 점령지대의 영국인을 포로로 하고 상품을 몰수하며, 영국 및 그 식민지로부터의 상선을 기항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을 규정해 놓았다. 그러나 봉쇄령으로 인한 피해는 영국보다는 유럽이 훨씬 컸다.
그러자 유럽 각국은 영국과 밀무역을 했고 봉쇄령의 효과는 떨어졌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도 밀무역이 성행한 러시아를 정벌하기 위해 단행됐다. ▲1898년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 출생 ▲1991년 이집트 정치가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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