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4일 부동산종합대책 발표를 하루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과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 등 부동산 정책 라인을 사실상 경질키로 했다. '전쟁 중엔 말을 갈아타지 않겠다.'고 했던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이다.
◆부동산 광풍에 백기=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전날 "책임지겠다."고 했던 추병직 건교장관이 "지금 사의 표명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을 뒤집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부동산 정책 실패 및 혼선 논란의 핵심 인물이었던 추 장관과 이 수석은 물론 8·31대책 수립에 참여했던 정 보좌관까지 전격 경질키로 했다. 사의표명을 수용하는 형식이지만 사실상 인책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
여론에 좀체 밀리지 않던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정부 신뢰 추락은 물론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없어 임기 말기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특히 '지금 집 사면 낭패'라는 청와대브리핑 글을 올렸던 이 수석이 최근 20억 원을 호가하는 서울 강남 아파트에 입주한 사실은 법적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에 치명상을 입혔다는 위기감이 청와대에 팽배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병완 비서실장 등 청와대 1급 이상 비서진이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인 서울 강남 등지 고급 아파트를 소유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이 청와대를 조롱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됐다.
이런 상황에선 '11·15 부동산 종합대책'에 대한 국민신뢰를 장담하기 힘든 측면이 강했다. 참여정부의 마지막 부동산 정책이라는 '11·15 대책'마저 국민이 신뢰하지 않을 경우 노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었다.
부동산 라인이 사의를 표명하고 11·15 대책 발표를 추 장관이 아니라 건교차관이 대신하기로 한 것 등은 '11·15 대책 만큼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정책 바뀌나=노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리는 정 보좌관이 교체 대상에 포함되면서 투기수요 억제와 공급확대를 양축으로 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친화적이고 공급을 중시하는 재정경제부의 '권오규 부총리-박병원 차관' 투톱이 향후 부동산 정책을 주도하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건교장관과 청와대 경제보좌관 교체로 부동산 정책의 변화를 점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중론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부동산 정책은 대통령께서 계속 챙기실 것"이라 말했다. 또 ▷신도시 조기건설 ▷신도시 추가지정 ▷주택담보대출 제한 ▷신도시 용적률 상향 조정 등을 통한 아파트 분양가 20~30% 인하 등 부동산 정책의 골격이 이미 드러난 상태이기도 하다.
◆부동산 정책은 성공한다?=이 홍보수석은 사퇴의 변에서 "투기억제와 공급 확대를 두 축으로 하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최선이고,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서 '말을 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금 부동산을 둘러싼 우리 상황의 핵심은 '정책 부실'이 아니라 '정책 불신'에 있다."면서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효과가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바뀔 것이다.'며 불신을 조장하는 언론의 자세가 변하지 않으면 부동산 문제 해결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사의 표명 직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했던 추 장관은 사의 표명 이후 침묵하고 있다. 건교부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는 후문만 들릴 뿐이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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