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잡아라

입력 2006-11-11 16:40:11

마크 카츠 지음, 허진 옮김/마티 펴냄

스트라빈스키는 1925년 '피아노를 위한 LA 세레나데' 각 악장(총 4악장)을 10인치짜리 78회전 레코드 한 면 길이인 3분에 맞도록 작곡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서전에서 '미국의 한 축음기 회사에서 레코드 몇 장을 내기로 했는데 나는 레코드 용량에 음악 길이를 맞춰서 곡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녹음 기술이 음악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책은 음악에 미친 녹음의 역사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위대한 발명은 예술의 형식뿐 아니라 예술적 발상, 예술 개념까지도 바꾸어버릴 것이다."는 폴 발레리의 말처럼 LP시대를 거쳐 카세트로, CD에서 다시 MP3로 숨가쁘게 진화해 온 녹음 기술은 음악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미국 피바디음대 음악학과 학과장인 저자는 녹음 기술이 어떻게 색다른 음악 감상법을 만들어 냈는지, 어떻게 연주자들의 관행을 변화시켰는지 등을 탐구한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는 미국 음악 교육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19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인들은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을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볼일을 보는 것과 같은 저속한 악취미로 여겼다. 그러다 유럽의 고상한 문화에 열등감을 갖고 있던 미국 사회는 축음기를 통해 '좋은 음악'이라 불리는 고전음악을 유럽인만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좋은 성격'을 지니게 되고 궁극적으로 '좋은 국가'가 될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이 형성되자 축음기 회사는 학교에 축음기를 보급하기 위해 음악 교재를 만들었으며 레코드에 실린 음악을 듣고 곡명을 맞추는 '음악 암기대회'도 미국 대륙 전역에서 열렸다.

바이올린의 비브라토(음을 상하로 가늘게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기법)도 20세기 녹음의 산물로 등장했다. 저자는 라이브 공연보다 레코드를 통해 음악을 들으면 불안전한 조음을 더 쉽게 알아챌 수 있는데 비브라토는 이를 무마해주었기 때문에 녹음의 시대 절박한 필요에 의해 태어난 미학이 비브라토라고 설명한다.

또 녹음 기술은 새로운 음악도 창조했다. 1930년 레코드 재생 속도를 늦추거나 빨리하면 음의 높이가 변한다는 사실을 안 힌데미트는 비올라 연주 레코드의 재생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이용,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를 내는데 성공했다는 것.

저자는 MP3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달로 최근 음악계의 가장 큰 골칫거리로 등장한 디지털 음악 파일 공유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무료로 음악을 내려받는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간주,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다운로더들이 체계에 따르도록 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체계를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382쪽, 1만 8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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