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네 탓이오'

입력 2006-11-11 10:51:37

'나는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 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 /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는 것도 찍힌다 /현상해보면 늘 바라던 것만이 나와 있어 나는 안심한다 / 바라지 않던 것이 보인 것은 환시였다고 /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 사진기는 / 내가 바라는 것만 찍어주는 고장 난 사진기였음을 / ……' 申庚林(신경림)의 시 '고장 난 사진기'는 자기 사진기에 대해 이같이 쓰고 있다.

◇하지만 시인이 실제로 강조하는 메시지는 '고장 난 認識眼(인식안)'에 대한 '자기 비판'이지 않은가. '자기 허물은 백사장에 새기고, 남의 허물은 금강석에 새긴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까닭은 '왜'일까.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제자리에서 자기반성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장 난 사진기를 탓하기에 앞서 '곧 나인 눈'을 의심하고, '내 탓'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청와대가 어제 不動産(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 건 '부동산 세력에 밀린 탓'이라며, '비싼 값에 지금 집을 샀다가는 낭패를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원인이 일부 언론'건설업체'금융기관 등에 있다는 소위 '네 탓이오' 타령이다. 지금 집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서민들은 조금 기다렸다가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최근의 부동산 이상 징후가 정책 실패가 아니고 일부 세력에 의한 시장 교란으로 책임을 돌리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청와대 홈페이지에 바로 '책임 회피하지 말라' '반대로 하면 돈 번다는 뜻이냐' 등의 댓글들이 쏟아졌다지만, 집값 파동으로 초조해진 서민들의 정서나 신도시 발표 혼선 등의 책임을 轉嫁(전가)하려는 게 아닌가.

◇참여정부의 '네 탓' 타령은 해도 너무하다. 정부가 부동산을 잡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지만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상황인데 이래서야 되겠는가. 옛날 王(왕)들은 天災(천재)든 人災(인재)든 몸소 십자가를 짊어지는 걸 고통 받는 백성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역사적 책무로 여겼다. 청와대가 책임을 회피하면 민초들은 기댈 언덕이 없어지고, 결국 그것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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