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야구장 떠나는 치어리더 김순희씨

입력 2006-11-09 09:57:24

"대한민국 1%의 범주에서 이제는 벗어난다고 생각하니까 아쉬워요"

대구 야구장의 마스코트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응원을 9년간 이끌어온 치어리더단의 맏언니 김순희(27)씨가 제2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를 끝으로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난다.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인 1998년 9월부터 대구구장 응원 단상에 올라 신나는 율동으로 사자 군단의 흥을 돋궈온 지도 벌써 9년. 김순희씨는 "계속 하고 싶지만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줘야 할 때"라며 응원단상에서 내려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야구장에서는 단상에 6명이 오르고 농구장에서는 8명이 활동하는 데 후배들이 팬 앞에 자주 나설 수 있도록 자신이 물러나겠다는 뜻이었다.

김 씨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삼성,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의 응원을 맡아 그라운드와 실내 코트를 휘젓고 다니며 1년 내내 바쁜 일상을 보냈다. 야구장을 떠남과 동시에 농구장에서 그를 보는 것도 올 시즌이 마지막이다.

삼성의 응원을 책임지는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을 3번이나 경험하면서 그는 운 좋은 치어리더로 남게 됐다.

2002년 마해영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삼성이 구단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있었다.

"6차전에서 만약 졌다면 7차전에서 꼭 이기기 위해 우리 치어리더들끼리는 모두 삼성의 상징색인 파란색 속옷을 입고 오자고 약속했었다"며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던 그였다.

"치어리더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야구를 잘 몰랐는데 지금은 삼성 선수단이 식구처럼 여겨진다"는 그는 3번이나 우승 현장에 있었던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올해 한화와 한국시리즈도 제일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었는데 세 번이나 연장전을 치르면서 선수 못지 않게 우리 치어리더들도 긴장을 많이 했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대전 원정지에서는 상대방도 응원을 너무 잘해 더욱 초조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승을 해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가장 씁쓸했던 장면은 역시 현대와 9차전 혈전을 치렀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때는 비가 많이 내렸었는데 공 하나로 졌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비도 맞고 서러웠고 그래서 펑펑 울었다"고 돌아봤다.

그리 많지 않은 월급에 자신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게 바로 치어리더다. 직업에 관한 자부심도 대단할 수밖에 없다.

은퇴를 앞둔 김순희씨는 "정말 아무나 못하는 직업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1%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하고 있는 일이다. 자부심도 컸고 정말 이런 일이 아니면 누구한테 그렇게 박수를 받을 수 있겠는가. 막상 은퇴한다고 생각하니 대한민국 1%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며 소감을 밝혔다.

응원의 불모지였던 대구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김순희씨는 "예전에는 율동을 펼칠 때 닭다리, 라면도 던지는 팬들이 있었는데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숙한 응원문화를 펼쳐달라'고 주문하자 시민들의 문화의식이 많이 좋아진 것을 요즘 느낀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지난 2004년 선동열 감독 부임 후 친선 경기차 찾았던 대만에서 삼성 선수단보다 훨씬 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삼성 치어리더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를 취재하고 있는 일본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미 6일 선수단보다 하루 먼저 도쿄에 들어와 각종 언론 인터뷰를 끝냈으며 9일 경기 당일 아침에는 니혼 TV 스튜디오에 출연해 갈고 닦은 율동을 선보이는 등 민간 대사의 구실도 톡톡히 해냈다.

"아마 대만이나 일본은 우리처럼 치어리더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신기해서 많은 관심을 보인 것 같다. 예쁘지도 않지만 대만, 일본의 치어리더보다 키도 크고 날씬해서인지 대만에서는 '핑클'이라는 말도 들었었다"며 밝게 웃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 전문대를 마친 김순희씨는 "2년 전부터 계획해 온 것인데 앞으로 4년제 대학에 편입, 스포츠이벤트 또는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하고 싶다"는 소박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소속사인 놀레벤트에서 치어리더 후배들의 훈련을 지도하는 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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