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중의(中醫)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이며, 대의(大醫)는 사회의 병까지 고치는 의사이다."
병, 의원을 다니며 의사를 자주 만나는 기자는 이 말을 항상 머리 속에 두고 있다. 과연 이 시대의 대의는 누구이며, 대의가 없다면 중의는 누구일까? 의사들은 푸념을 한다. 한 동네에 몇 곳이나 병·의원이 생겨나 치열한 경쟁을 하는 판에, 그리고 의사의 소신보다는 건강보험제도와 제한된 보험 재정의 틀 안에서 진료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 속에서 대의나 중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런 세상일수록 우리는 '큰 의사'를 더욱 갈망한다. 밤에 촛불을 켜들고 세상을 구제할 영웅을 찾듯이.
고 장기려(張起呂) 박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술을 펼친 슈바이처 박사는 알아도 장 박사를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의사들 가운데도 그 분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1995년 12월 부산복음병원장으로 생을 마감한 그는 의과대 교수를 했으며, 한국간외과학회의 창시자로 추앙될 정도로 유명한 외과 의사였다. 그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다른 별명이 있다.'바보 의사'이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천막진료'를 시작했다. 병원 시설이 없어서 천막을 쳐 놓고 환자를 본 것이다. 물론 의료 시설이 열악했기 때문에 그 시절 그렇게 환자를 본 의사들은 많다. 하지만 그의 '천막진료' 정신은 죽는 날까지 이어졌다. 그가 일했던 부산복음병원에는 전국에서 가난한 환자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장 박사는 환자의 딱한 사정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월급을 가불받아서 그들의 진료비와 약값을 댔다. 그런 탓에 병원 경영 상태는 날로 어려운 상태가 됐다. 어느 날 참다못한 병원 직원들이 원장(장 박사)에게 무료 환자에 대한 결정을 병원 부장 회의에 맡겨달라고 간청을 했단다. 그런데도 장 박사의 '바보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환자들에게 그가 한 말. "내가 밤에 나가서 살짝 병원 문을 열어 놓을 터니 그때 도망가시오."
그는 1968년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이 났을 때 도움받자.'란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협동조합 운동인 '청십자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60년 넘게 의사 생활을 했지만 죽을 때는 서민아파트 한 칸도, 묻힐 땅 한 평도 없었다고 한다.
장 박사의 동년배들이 모두 그렇게 산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의사 활동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고, 병원을 높게 세웠다.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고 대의나 중의가 되기를, 대의와 중의를 찾기를 포기해선 안 되겠다. 세상이 변해도 만들고 지켜가야 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소아과 교수가 자신이 돌보던 아이의 치료비를 만들기 위해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물론, 스스로 병원에서 모금 운동을 벌였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사회복지시설의 아이들의 흉터나 선천성 기형을 무료 성형수술 해주고 싶다고 기자를 찾았던 성형외과 의사의 얼굴도 떠오른다.
김교영(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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