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버지는 늘 어렵기만 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이미 회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었다. 쉰셋에 본 막내아들 때문에 무던히 속을 태우시던 아버지는 여든둘에 이승을 떴다. 그런 아버지에게 난세를 살아가야 할 막내에 대한 걱정이 늘 가슴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리라.
아버지는 "남자는 뒤에 그림자가 없어야 돼."라고 늘 말씀했다. 열네살에 소년 가장이 된 아버지는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건사하면서 어렵사리 가정을 일궜다. 그러나 일생동안 딸깍발이 정신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하지 않았다. 정말 당신이 앉았다 떠난 뒷자리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소가 집안 살림의 반'이라던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는 중년에 수십 마리의 소를 거느린 소장수로 얼마간의 부를 이뤘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통뼈였던 아버지는 한 자리에 앉아서 소주 한 되와 막걸리 한 말을 마시고도 1백m를 거뜬히 돌고 왔다나 어쨌다나.
이십대 초반의 문청 시절. 변변하게 내세울 학벌도, 반듯한 직업도 없었던 나는 '왜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라는 치기와 자괴감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식사를 막 끝낸 아버지가 뜬금없이 한 마디 툭 던지시는 것이었다.
"얘야, 너는 평생 책하고 살아야 될 것만 같구나." 나는 이 말씀을 그냥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그러나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아버지의 이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글 쓰는 일과 책 만드는 일로 살아가고 있으니 선친의 예견이 어지간히 맞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의 그 말씀 한 마디가 내게 남은 유일한 유산(遺産)이었다. 이 말씀 속에는 알 수 없는 회한과 애정이 곡진하게 묻어 있다. 전자유목민 시대를 건너가는 신세대 아들에게 "얘야, 너는 평생 컴퓨터하고만 살아야 될 것만 같구나."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몇 점의 아버지일까?
젊은 날 내게 부(富)의 척도는 이랬다. 책을 마음놓고 사 볼 수 있는 수준, 그랬다. 얄팍한 호주머니 사정으로 책을 마음껏 사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 대단한 부자이다. 책 속에 묻혀서, 그것도 나름대로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사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단언하건대 나는 부자이다.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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