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를 구분하기 힘든 전쟁 포화속에서도 믿음의 꽃은 피어나는 것일까. 동족상잔의 비극, 민족의 커다란 상흔으로 자리하고 있는 6.25를 겪으면서 오히려 세계인의 이목을 끈 개신교회가 있다. 어느 누군들 이 전란에서 피흘리지 않았으며, 공산당의 만행에 화를 입지 않을 수 있었으랴.
민족 모두가 피할 수 없었던 고난의 길이자 비극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합쳐도 교회처럼 고통스럽게 6.25를 겪은 곳도 드물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믿는 공산당은 교인들을 반동 혹은 친미분자로 몰아서 희생시키거나 납치했다. 전국에서 300개의 교회가 부서졌고, 수만명의 교역자들이 끌려가고 죽임을 당하는 위기국면이 계속됐다.
그러나 주님의 진정한 사랑은 모든 위기를 물리칠 힘을 갖는 것일까? 잿더미가 된 포항시가지에 6.25 참화를 이겨내고 우뚝 버티고 서있던 교회를 타임지에서는 '축복받은 교회'로 부르며 전세계로 사진을 실어보냈다.
이제는 포항시 용흥동 새 성전으로 옮겨온 포항제일교회가 쓰던 구 교회(현재 소망교회)의 증축 전 벽돌 교회가 바로 세계 속에 화제를 뿌린 지역 개신교계의 성지였다.
◇ 8월 11일 미명에 공격받아 잿더미가 된 포항
1950년 8월 11일, 어둠이 미처 걷히지 않은 새벽 4시, 갑자기 인민군이 총성을 울리며 포항으로 쳐들어왔다. 이보다 조금전인 7월 20일경, 김일성이 수안보에서 내린 독전 명령(=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에 혈안이 된 인민 무력군은 포항을 공격해온 것이다. 이로써 포항은 42일 간 점령당하고, 다시 되찾는 처절한 전장터로 변했다. 육로와 항구를 동시에 갖춘 교통 요로이자 지상군을 지원하는 오천(=영일) 비행장까지 끼고 있는 포항이 점령당하면, 남한의 마지막 보루인 대구도, 나라의 운명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누란의 위기였다. 인민군의 공세를 피해, 포항시민들은 피난 보따리를 쌌다. 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 500여 교인들도 피난길에 올랐다.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길, 서글프고 막막하기 그지 없지만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피난길이라야 몇발자욱 가지 못하고, UN군이 반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던 교인들은 깜짝 놀라 그자리에 얼어버렸다. 살던 집과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까지 모두가 사라지고 없는 땅에 마치 하늘의 궁궐인양 포항교회가 덩그랗게 서있는 것이었다.
◇ 폐허속에 살아남은 축북받은 교회
가족을 잃은 교인도, 살림살이를 몽땅 잃어버린 교인도, 집이 날아간 교인도 매한가지로 놀라면서 높은 곳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강하게 느꼈다. 잿더미를 뚫고 하늘 높이 솟아있는 종각과 일제 치하에서 교우들이 벽돌한장사기 운동을 통해 지은 포항교회는 살아있었다. "주님의 권능으로 하시고자하면 못함이 없사오니, 모든 것을 순종하겠나이다." 당시 김상용(당시 교인이 아님) 씨는 "포항 시내가 불바다가 되고, 집채같은 불기둥이 밀려오다가 교회 부근에서 꺼져버렸다."고 증언했다. 잿더미 속에 어떤 건물이라도 성하게 남아있으면 신비로울 텐데, 교회 성전이 온전히 보존된 것을 보는 양들은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처럼 느꼈다. 이런 현장은 외신을 타고 해외로 타전됐다. 타임지는 폐허더미에서 살아남은 포항(제일)교회를 '축복받은 교회'로 부르며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근현대사에 의미있는 새로운 성지로 부상됐다. 세계 전쟁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 작곡가 박태준이 할렐루야 전국 연주
6.25 사변 당시 피난 온 음악가 박태준('오빠 생각', '새 나라의 어린이' 작곡가)은 실력이 뛰어난 포항(제일)교회 성가대와 청년합주단, 포항지역 미 해병대 군악대 등으로 구성, 할렐루야 전곡을 연주했다. 한강 이남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할렐루야 전곡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며 동해 바닷가까지 퍼져나갔다. 포항(제일)교회는 폭격을 받아 무너지는 것은 비껴갔지만, 인민군이 교회를 야전병원으로 쓰면서 내부가 엉망이 됐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양심을 지키고 주위로 따뜻한 눈길을 주는 것임을 아는 이곳 교인들은 헐벗은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진 돈과 물질, 시간의 10분의 1을 꼭꼭 바쳤다. 포항(제일)교회 아내들은 밥을 짓기 전에 식구 수대로 쌀 한 숟가락씩 모았다. 성미(誠米)였다. 이 쌀은 주로 빈궁한 사람들의 양식으로 쓰였다. 사랑 나눔이었다. 전쟁을 치르고 난 뒤, 교회 이름을 포항제일교회로 바꿨다. 36세의 젊은 김동익 목사가 부임하면서 새로운 성령으로 충만해져, 즐겁고 신나는 마음으로 교회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어느새 교인들의 맘속에는 '축복받은 교회'가 생활속에 자리잡은 개신교 성지로 거듭났다. 이곳에서 교인들과 사랑과 헌신을 나누던 김 목사는 은퇴하는 강신명 목사의 뒤를 이어 한국의 어머니 교회인 새문안 교회로 가서 한국교계의 큰 종이 되었다.
◇ 성령으로 충만하 즐겁고 행복한 교회
교인들은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燈)이요, 내 앞길의 빛이니라."는 시편의 말씀을 순종하며, 낙심하는 자를 위로했고, 불(不)신자들을 교회로 모셨다. 하루의 10분의 1을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교인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외적 성장 못지않게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로 가면서 맞닿뜨릴 수 있는 물량주의와 인간성 황폐화를 막으려 노력하며 러시아 카자흐스탄에 이어 몽골 울란바토르에 강잠제일교회를 창설했다. 19번째 해외교회였다. 1905년 5월에 창설, 100주년을 넘긴 포항제일교회(담임목사 김광웅) 성도들은 오늘도 이렇게 기도한다. "제가 먼저 정직하게 살고, 노름이나 도박을 하지 않으며, 술에 손대지 않겠습니다. '주님 함께, 이웃 함께, 자연과 함께' 를 맘속 깊이 새기고 땅끝까지 주님을 증거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성시화 도와주실꺼죠!"
글 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사진 정우용 기자 vin@msnet.co.kr
취재 동행 채옥주 경북도의원(교육환경위)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