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핏줄보다 동맹보다 진한 것

입력 2006-10-26 11:39:05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 腱(건)은 성장잠재력 저하이다. 여기에 저출산과 고령화가 바쁜 발걸음에 딴지를 걸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쇠퇴하면서 고용과 내수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대기업 중심의 수출 외끌이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 그러나 성장잠재력의 추락을 회복할 妙手(묘수)가 뚜렷하지 않다.

수출부문 역시 고유가 등으로 교역조건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어 樂觀(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내수가 살아나야 하나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내수 기업들의 실적부진이 지속되고 있어 희망사항일 뿐이다. 게다가 주력 수출품이 경기에 민감한 반면 고용기여도는 낮은 IT 업종 중심이어서 호황은 짧고, 불황은 길어지는 형국이다.

우리 경제는 일본을 모델로 압축 성장을 달성했다. 하지만 '일본 옷'은 더 이상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됐다. 국내시장이 협소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와 달리 일본은 1억2천만 명에 달하는 탄탄한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우리의 4분의 1에 불과한 20%선이다. 따라서 일본식 성장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독자 성장모델을 찾아야하나 커닝할 대상조차 없는 상황이다.

수출과 내수의 균형 성장을 달성하면서 무역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은 비좁은 국토를 넓히고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도 아닌 터에 영토를 확장할 묘안이 있을 리 만무하고 출산장려책을 쓴다고 세계 최저출산율이 갑자기 치솟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북한이 있다. 현재 남과 북을 합친 인구는 6천만 명을 웃돈다. 일본에 버금가는 1억 명 수준은 돼야 하겠으나 좁은 땅에 부양인구가 너무 많은 것도 부담이다.

북한을 흡수 통일하자는 얘기냐고? 아니다. 가능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지 않은가. 독일통일 당시 우리의 10배 이상 경제력을 지녔던 서독조차 동독을 흡수 통일한 뒤 10년 이상 헤매지 않았는가. 더욱이 국민이야 굶어죽든 말든 체제 유지를 위해 '핵 장난'까지 서슴지 않는 김정일 정권이 버티고 있는 마당에 흡수통일은 언감생심이다. 또 남한 국민들 역시 통일의 대가로 현재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그냥 지금처럼 살자고 할 사람이 훨씬 많은 실정이다. 북한을 우리 경제 체제로 편입시키는 것이 현시점에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는 방안이다. '경제적 통일'을 통해 내수 시장을 넓히는 것만이 '세계의 공장' 중국과 세계 최고의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북한 핵실험의 여파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매우 급박하고 엄중하다. 자칫 우리의 운명이 남의 손에 좌지우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데 지금 국내 상황은 어떤가.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에 합심해 대처해도 시원찮을 판에 '외눈박이'들이 서로 저만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1조 달러 재산피해와 100만 명 사망을 예상하는 분석에도 '전쟁 불사론'을 외치는 '오른눈박이'와 북한의 핵 장난에 눈감는 '왼눈박이'들이 그들이다.

북한의 남한 시장경제 체제 편입을 통한 남북의 '경제 통일'은 내수시장을 키우고 무역의존도를 줄인다. 대외 변동성에 취약한 우리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에 一喜一悲(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모 야당 인사는 民族(민족)보다 同盟(동맹)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일 게다. 민족보다 동맹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동맹보다 더욱 중요한 게 國益(국익)이다. 한미 FTA 협상과정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제 관계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 주위엔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호시탐탐 우리 땅을 노리는 이웃, 역사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또 다른 이웃, 핵 위협을 앞세워 시장만 열면 된다는 동맹이 있다. 나라가 있어야 정권도 있다. 그래도 싸움질만 할 텐가.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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