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김선옥 씨와 '혈액성 림프종'앓는 딸

입력 2006-10-25 09:25:14

혹시 북쪽에서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탈북한 여자입니다. 몇 년 전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해서 한국에 들어왔지요. 목숨을 걸었지요. 중국 텔레비전에서 이 곳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으로 비춰졌습니다. 일한 만큼 벌고 그 돈이 다 내 것이 되는···. 저는 희망을 품고 왔습니다.

그런데요 이제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곱디고운 딸 서녕(6)이가 아프거든요. 혈액에 물이 차오르는 '혈액성 림프종'이라는데 평생 물을 뽑아내야 하는 몹쓸 병이라고 합니다. 벌써 5번도 넘게 수술을 했지요.

서녕이는 뛰지 못합니다. 뛰다 넘어져서 온몸은 멍투성이예요. 왜 넘어지냐면요. 이상하게 큰 왼쪽 발가락 두 개를 잘라냈기 때문입니다. 하얀 속살도 두 뼘도 넘는 수술 자국으로 만신창이입니다. 그걸 볼 때마다 두 눈을 질끈 감는 제가 오히려 미안하지요. 서녕이는 그 무더운 지난 여름에도 양말 한번 벗지 못했답니다.

제가 저주를 받은 것일까요. 돌도 되지 않은 첫 애는 두만강을 건너다 영양실조로 잃었습니다. 내 새끼 하나 살리지 못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런지요. 그 아이가 떠나간 하늘만 바라봤으면 좋았겠지만 저는 중국에서 한 조선족과 함께 살며 서녕이를 낳았습니다. 하늘이 제발 서녕이만은 데려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 빚쟁이입니다. 1천200만 원을 갚아야 합니다. 1천만 원만 투자하면 한달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다단계'라고 하더군요.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냐고 경찰에게 물었더니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랍니다. 그게 왜 없는 돈인지···. 그리고 중국에 있는 남편을 데려오려 800만 원을 보냈는데 감감 무소식입니다.

몇 달 전부터는 집 앞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 십만 원하는 자릿세를 냈지만 서녕이 수술비와 약값을 벌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이른 새벽 매천동 경매시장에서 채소를 사 와 하루 내내 품을 팔아도 행복했습니다. 밤 11시까지 일해도 마음은 편했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몇만 원 벌기도 벅차네요. 고추, 감자며 채소는 썩어서 버리는게 더 많아지네요. 경기가 안좋은 탓이라는데 제가 보기엔 채소가판도 너무 많아진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제 자신과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영양실조로 한 줌 흙이 된 첫 애처럼 서녕이는 보내지 말자고. 제가 과자 한 봉지로 끼니를 떼워도 서녕이에겐 영양제며 누에고치에다 실크아미노산을 먹이겠다고. 병원에서 오라는 시간에 가지 못하면 어김없이 몸이 부풀어오르는 우리 딸이 어떻게든 일어나야 하니까요. 그래야 제가 살아갈 기력이 생기니까 말이예요.

지난달 말 대구 한 임대아파트 부근 시장 앞 채소가판대에서 만난 김선옥(가명·46) 씨는 서녕이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어설픈 북한 사투리로 "보고가이소. 보고가이소."를 외쳤지만 찾는 손님은 없었다. "살아가찮지(살아서 뭐하냐하는 북한 말 같음)."라며 읖조리다 서녕이에게 준다며 빵을 사왔다. 그는 탈북자 지원금 33만 원을 고스란히 병원비와 약값으로 쓰고 있었다. 서녕이는 단지 안에 있는 복지관 어린이집을 무료로 다닌다. 하지만 엄마가 없는 저녁 시간에는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침대 위에서 뛰어논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머리카락은 혼자 가위질을 하다 낸 상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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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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