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색/강준만 지음/개마고원 펴냄
한국인은 특이하다. 정이 많지만 다혈질이고 유행에 민감한데다 모이기를 좋아한다.
이 책은 누구나 느끼는 이런 특성들을 여러 가지 정치·사회·문화적 근거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정리한 책으로, '한국인의 인간관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키워드는 사랑, 욕망, 청춘, 진실 등 네 가지로, 한국사회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저자는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의 입을 빌어 한국인은 아무래도 감각·직관·공간지각력 등을 관장하는 우뇌쪽이 발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정을 맘껏 발산하는 세계적인 연주가는 많지만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세계적인 작곡가는 거의 없으며 전체적인 감각에 의존해야 하는 양궁이나 골프에서 우리나라가 특히 강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에서 유행하는 '쿨'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시적 유행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인은 '웜(warm)'보다 '핫(hot)'에 가깝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쿨'은 유행일 뿐 실제로 신세대들은 '쿨해야 한다'는 강박에 지쳐가고 있다는 것. 오히려 감정을 발산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성격을 결정하는 최대의 요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 발산에 능한 정권'이다. 물론 부정적인 쪽으로의 감정 발산이었는데, 주로 원망과 분노다.
한국정치에 대한 저자의 또다른 분석은 '한국인의 싸움 사랑'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 내심 즐기지만 겉으론 욕하기 때문에 언제나 욕먹는 데에 개의치 않는 후안무치형 선수들이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호칭에 관해 아주 엄격하다. 2004년엔 초등학교 동창생이자 처남·매제 사이인 40대의 두 남자가 호칭 문제로 싸움이 붙어 살인을 저지른 사건까지 있었다. 살인은 예외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호칭은 우리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다. 우리는 '노숙자'보다는 '노숙인'을 격상된 호칭으로 여기고 식당에서 종업원을 '아가씨'로 불렀다가는 '아가씨'란 오칭의 편견 때문에 말싸움에 휘말릴 소지도 있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호칭이 복잡하고 호칭에 민감한 것에 대해 저자는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가급적 '나'를 죽이고 집단 내 위계질서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정해지는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정치인들의 연설에서도 자신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데, 김영삼 대통령은 첫 국정연설에서 '저'를 23번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단히 '나'를 내세우는 편이다. '대통령학'에는 '나'라는 말을 가급적 삼가라는 고언이 담겨 있다. '나'를 내세울 수록 국민과 멀어질 뿐이라는 것. 최근에는 호칭파괴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대안교육을 하는 간디학교 학생들은 교사들을 '쌤'이라고 부른다. 수직적 호칭을 완화하기 위해서인데, 고 이오덕 옹 역시 자신보다 수십년 아래의 사람에게도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을 보면서 저자는 한국 호칭문화의 경직성이 초래하는 문제를 다시한번 되새기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전해준다. 키스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 우리나라 영화에서 키스장면이 처음 상영된 것은 1954년이다.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에서 입술만 살짝 댄 5~6초짜리 장면이 있었는데, 여주인공이 입술에 셀룰로이드를 붙이고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반향은 컸다. 당시 여자 주인공 윤인자는 30세 유부녀였는데, 대본에 없는 연기를 시켰다고 윤인자 남편이 고소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남자 배우를 죽이겠다고 쫒아다니기까지 했다. 대중매체는 물론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낯뜨거운 키스를 종종 접하게 되는 오늘날엔 우스운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언론 보도를 비롯해 각종 연구자료, 통계 등을 인용하되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한데 엮어, 한국인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게끔 하는 통찰력있는 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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