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광무제 때 예순이 넘긴 나이에도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타 전장 나가기를 머뭇거리지 않았던 명장 마원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 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 대장부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
퇴직한 지 17년이면 세월의 녹이 슬 법도 한데 김종대(80) 전 대구 교육감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젊은이가 무색할 정도로 굳은 기백이 느껴졌다.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국사교육을 강화해 청소년들이 민족의 기상을 깨우치도록 해야 합니다. 윤리, 도덕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나라의 참된 주인을 길러야 합니다."
최근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김 전 교육감의 목소리는 적어도 두 톤 이상 높아졌다.
"고교 평준화는 재검토해야죠.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하려면 현 교육제도의 기초부터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교사 양성도 지금처럼은 안 돼요. 종합대학의 단과대 형태로 운영해서는 안 됩니다. 전문 양성기관을 만들고 거기서 훌륭한 교사를 길러야 훌륭한 학생이 나옵니다."
그의 열변이 단순히 지난 교육 경력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자산장학재단 이사장에 화성문화장학재단 이사, 우송복지재단 이사, 대구시 원로자문위원 등 교육과 인재양성 관련 분야 곳곳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현역'의 목소리였다.
그 만큼의 고뇌도 담겼다. "요즘도 학교나 교사, 학생들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직에 있을 때 더 열심히 했으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았을까 후회도 들고요."
1985년부터 89년까지 대구시 교육감으로 재임하면서 그가 이룬 공은 결코 작지 않다. 기본학력 신장에 중점을 둬 지역학생들의 학력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도 그때다. 과학영재 양성을 위해 대구과학고를 유치한 것도 그의 공로.
"84년에 전국에 과학고 4개가 설립됐는데 영남권에는 진주에 생겼죠. 그런데 교육감에 취임하고 보니 대구학생은 한 명도 없다는 겁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곧바로 문교부장관을 만났죠. 우여곡절 끝에 88년 개교했고, 첫 입학생 전원이 조기졸업을 통해 과학기술대에 입학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첫 교장 부임지로 울릉도 수산고로 발령 받은 이야기, 농업계에서 공업계로 금세 바뀐 구미공고를 특성화 학교로 전환한 일, 경주 화랑교육원 초대 원장을 맡아 수시로 청와대에까지 성과를 보고하던 일 등 김 전 교육감의 교육계 생활에는 굴곡이 적잖았다. 요즘은 이런 내용들을 모아 회고록 형태의 책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정리하다 보니 앨범이 40권도 더 되더군요. 회고록이랍시고 쓸 데 없이 사설을 늘어 놓느니 사진을 모아서 설명을 조금씩 붙이면 읽기가 훨씬 좋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남들과는 뭔가 다른, 가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왔는데 어떠냐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여러 곳에 걸쳐 있다 보니 늘 바쁘다."는 김 전 교육감이지만 올해 들어서는 첫 번째로 챙기는 일이 부인 간병이다. 연초에 대퇴골 골절상을 입어 큰 수술을 받은 뒤로 지금껏 완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고생만 시켰는데 조금이라도 갚아야죠. 선생 월급만 갖고 2남 4녀 대학을 다 보내고 둘째 아들은 미국 유학까지 시켰으니 누가 뭐래도 대단한 여성입니다."
김 전 교육감의 큰 딸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어머니에게 한 첫 선물은 내의 스무 벌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먼저 닳는 곳은 내의 겨드랑이 부분. 버리기가 아까워 평생 겨드랑이 없는 내의만 입은 어머니에게 "이제 겨드랑이 있는 내의 실컷 입으세요."하며 내밀던 딸의 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오후 시간, 김 전 교육감이 즐겨 찾는 곳은 대구 중구 삼덕동 금복주 빌딩 3층에 있는 청풍회 사무실이다. 청풍회는 지난 89년 그의 퇴임 후 함께 중국 여행을 다녀온 10여 명이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김무연 전 경북도지사,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 권태학 전 대구은행장, 김홍식 금복주 회장, 고 구본흥 대구백화점 회장 등 대구의 유명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모두 쟁쟁한 분들이죠. 한 달에 한 번씩 골프나 치며 친목을 도모하자고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계속해왔지만 2002년에 회원 대부분이 대구시 원로 자문위원으로 위촉됐을 정도입니다. 약속은 안 해도 매일 10여 명이 이곳 사랑방에 모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여생을 웃으면서 즐겁게 보내면 되지."라면서도 "조그만 일, 말 한 마디라도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김 전 교육감.
"교육은 사랑입니다. 사랑 속에 계율이 있고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을 갖고 성실하게 가르쳐야 우리 교육이 제대로 설 수 있습니다." 교육가족들에게 진심어린 당부를 잊지 않는 그에게서 후한 마원의 '노익장(老益壯)' 이야기가 자연스레 스쳤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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