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록그룹 스모키(Smokie) 내한 대구 공연이 이달 초 시민회관에서 있었다. 예상대로 객석은 중년의 관객들로 만원을 이루었고 공연장 분위기는 7080시대를 재연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없던 전자봉까지 등장했다. 환호성을 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와 객석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박수치고 춤추며 출렁이는 모습은 댄스그룹에 열광하는 요즘 10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스모키는 그들의 사운드가 담배연기처럼 아련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이 1976년 발표한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Living Next Door to Alice)'를 비롯 '왓 캔 아이 두(What Can I Do)' '멕시칸 걸(Mexican Girl)' 등 히트곡은 70년대 후반을 넘어 80년대까지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Living Next Door to Alice' 'What Can I Do' 등이 수록된 음반은 팝 앨범으로는 국내 최초로 100만 장을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스모키는 당대의 인기 그룹이긴 하지만 1960, 70년대를 풍미한 비틀즈나 크리프 리처드,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세계 대중 음악의 흐름을 뒤바꿀 정도의 거대한 아티스트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스모키를 찾아내서 즐길 줄 알았던 한국의 7080세대는 누구인가.
이 시대의 주역이다. 1970, 80년대에 20대 전후 젊은 시절을 산 이들을 7080세대라고 지칭한다고 할 때 이들은 현재 사회 각계 각층을 이끌어 가는 주도세력이다. 젊은 날의 추억을 노래하지만 여전히 年富力强(연부역강)한 주류다. 이들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서정과 함께 스모키의 영국식 록 특유의 창법과 독창적 분위기에 매료돼 춤추고 노래했다. 그리고 시골 '가요콩쿨대회'에서 나훈아'남진을 노래하고 조용필에 열광하던 젊은이들이다. 통기타와 포크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멋을 아는 젊은 세대였다.
그 이전 시대 浮黃(부황)든 얼굴에 거지꼴로 노래 부르던 부모 세대들의 측은한 낭만과는 전혀 다른, 제법 생기가 돌고 활짝 피어나는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그것은 실로 5천년 역사에 처음 맞는 것이었다. 비록 온전하진 않았지만 자유와 풍요를 한반도에서 제대로 즐기기 시작한 세대는 7080세대가 효시라 해서 과언 아니다. 봉건 왕조가 폐단된 지 얼마나 지났으며,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지 몇 년이나 흘렀고, 6'25전쟁으로 만신창이된 게 언제였던가를 생각하면 천지개벽과도 같다. 세계가 찬양하는 한강의 기적은 7080연대 부모 세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7080세대는 역사적으로 행운의 세대라 할 만하다. 청춘찬가를 구가하고 민주화운동에도 나섰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이 도를 넘어 통일운동이랍시고 북한 김일성 폭압 왕조에 맹종하는 단계로 들어서면서 7080시대는 철저히 왜곡되고 매도된다. 7080세대 특히 386으로 지칭되는 세대, 그 중에서도 폭력시위를 통해 입신을 노린 386 정치투쟁꾼들은 스모키'조용필 대신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들은 DJ'노무현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 이른바 햇볕정책 민족공조의 전위대로 북한 왕조를 돕고 급기야 핵의 위협을 불러 왔다.
북핵으로 분명해진 것은 남북 간 힘의 균형이 깨어졌다는 사실이고, 퍼주기가 아닌 가슴 졸이며 조공해야 하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반도 운명이 열강의 야합에 좌우될 첨예한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민족 중흥은 민족 중절의 위기를 맞고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지금 젊은 세대의 높은 실업률이 가장 실감나는 징조다. 7080시대를 정점으로 국운을 탕진하기만 하지 않았는지. 100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멸망한 역사상의 短命(단명) 국가들을 돌아볼 때가 됐다.
스모키는 지난 1982년 일시 해체되기도 하고 일부 멤버가 바뀌기도 했으나 전성기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왓 캔 아이 두'의 '왓'에 자지러지는 7080 관객들은 행복했다.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
김재열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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