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자정부 제5단계 진입의 과제

입력 2006-10-12 07:49:19

최근 언론에 보도된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희비가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글로벌경쟁력 지수' 평가결과로서, 한국이 지난해 19위에서 올해는 24위로 떨어진 것이다. 조사항목 가운데 정부부문 경쟁력에 직결된 '창업관련 행정절차 수'에서는 85위, '정부지출 낭비'에서는 73위를 각각 차지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 브라운대학이 실시한 '글로벌 전자정부' 평가결과로서, 한국 정부가 '홈페이지 관리'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 198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것도 작년과 재작년에는 32위와 86위였다고 하니 선뜻 믿기 어려울 만한 도약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국제경쟁력 지수'니 '부패인식 지수'니 하는 국제비교 결과들은 측정지표 설정에 있어서 혹은 자료수집 방법에 있어서 사회과학적으로는 타당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없지 않다. 이 때문에 평가결과가 들쑥날쑥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년도별로 발표되는 국가별 순위를 놓고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대체적인 변화의 경향을 헤아리면서 자국의 강점과 취약점으로 지목되는 항목들을 정책추진과정에서 참고로 삼으면 족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금년에 한국이 '홈페이지 관리'에서 크게 발전했다는 앞의 보도에 의의가 없지 않다. 이미 전자정부 추진에 있어서 한국은 세계 최상위권에 도달해 있다. 인구 2인당 1대 이상의 개인컴퓨터 보급, 초고속 전산망 구축, 거의 모든 서류의 디지털화, 전체 가구의 73%가 초고속 인터넷 가입, 전체 인구의 약 4분지 3이 (그것도 70%이상의 이용률로) 인터넷 사용 등은 가히 세계적인 기록이다.

이와 같은 정보화 하부구조를 바탕으로 한국은 '전자정부 준비지수'에서 세계 5위, 그리고 국가정보화 지수에서는 세계 3위에 올라서 있다. 전자정부 추진에서만은 일본을 비롯한 많은 경제대국들보다도 훨씬 앞서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며, 이른바 21세기형 '지식정보국가'로서의 기본 요건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유엔과 미국행정학회가 최근에 공동으로 개발한 이른바 '전자정부 5단계 모형'에서 한국은 4번째 단계인 '전자거래'의 수준에는 도달해 있으나, 5번째 단계인 '마디 없는 통합'의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다섯 번째 단계로의 진입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력을 통해 전자정부의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일도 어려운 과제이지만, 이렇게 구축된 하부구조를 활용하는 문제는 사람들의 행태와 사회구조적인 사안에 결부되는 좀더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전자정부 추진의 마지막 단계인 제5단계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 에는 개인간 혹은 조직간에 정보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포함된다. 만일 공무원들이 각자 자신만의 지식정보를 컴퓨터에 축적해 놓고 혼자 그 정보를 활용한다고 하면, 전자정부화의 효과란 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나 조직들이 축적해 놓은 지식정보를 서로 원활하게 공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마디 없는 통합'의 단계를 의미한다.

물론 정보공유와 그로 인한 효율성 극대화라는 가치의 이면에는 시민들의 사적 정보보호라는 가치가 또한 존재하고, 이와 관련하여 완벽한 기술적 및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제조건이 구비된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행정문화적 특성으로 인한 걸림돌이 있다. 자신이 공무상 축적해 놓은 자료를 심지어 후임자에게 까지도 인수인계를 꺼리는 행정행태나 유난히도 두꺼운 정부부서간의 벽은 모두 행정정보의 공유를 가로막는 요인들이다.

시민들의 각종 민원서류 제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행정정보공유추진' 사업과 법질서유지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추진' 사업을 최근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것에 기대를 걸어 본다.

정용덕(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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