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사례 늘어…"보복이 두려워 하소연도 못해"
고교 3학년인 김모(17) 양은 선생님의 눈길이 섬뜩하다고 했다. 지난 달 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김 양에게 "진학 상담을 하자."며 접근, 자신의 집으로 잡아끌었던 것. 음란물을 틀어놓고는 "너를 좋아한다."며 몸을 더듬는 선생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울며 애원한 끝에 겨우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김 양의 학교 생활은 엉망이 됐다. 선생님의 태도가 확 바뀐 것. 김 양은"노골적으로 짜증을 내고 꾸중하는 선생님 때문에 미칠 것 같다."며 "고민 끝에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털어놨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대구시내 청소년 상담소마다 위 사례와 같은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부 교사들의 성적 폭력행태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는 것. 잦은 신체접촉으로 여학생들의 수치심을 자아내거나 심지어 성추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 학생들은 보복이나 소문 등 2차피해가 두려워 하소연조차 못하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대구·경북지부 청소년 상담실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교사의 성폭력으로 피해를 호소한 상담 건수는 모두 9건으로 지난해의 3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대부분이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밤늦은 시간에 성적이나 진학 상담을 이유로 따라나섰다가 '당했다'고 털어놨다.
학원 강사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7월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던 이모(17) 양은 강사에게 강제로 겁탈당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발설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에 입을 다물었지만 성폭행은 재차 이어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해당 강사의 부인과 가족들은 오히려 피해학생을 협박했다.
학교 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은 더욱 심각한 문제. 불쾌한 신체접촉이나 모욕적인 말투에 상처를 받아도 차마 표현 조차 못하고 참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고교 2년생 정모(17) 양은"자율학습 시간에 들어와 목이나 귓불을 만지거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는 교사들도 있다."며"섬뜩한 기분까지 들지만 주변에 말하기도 어려워 친구들끼리'조심하자.'고 다짐하고 만다."고 전했다.
고교 3학년 최모(18) 양은"가슴을 유심히 쳐다보며 '색기가 흐른다.', '남자 잘 꼬시겠다.'는 등 모욕을 주는 경우도 있다."며"그저'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낸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주변의 소문이 무섭고 얘기를 하더라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하소연도 못한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가만히 있는데 그랬겠느냐', '공부도 못하는 게 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식으로 매도당하거나 '너만 입 다물면 된다.'는 식으로 조용히 무마하려는 경우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학생들은 제2, 제3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채 지내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교직원을 대상으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성문제에 관한 교육계 전반의 인식 전환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 현재 대구시교육청은 학교 내에서 자체 교육을 하고 지난 해부터 매년 1회 성폭력, 성희롱 교육 연수회도 열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박신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장은"성희롱 예방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데다 '왜 우리가 이런 교육을 받느냐.'는 식의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며"학교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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