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받아쓰기와 생각쓰기

입력 2006-09-26 07:20:19

1950년대 초반, 일선 군부대 소대장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소대원들에게 온 편지를 읽어주고 또 그 답장을 대필하는 일이었답니다. 글을 모르는 장정들이 이외로 많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장정들 중에는 일찍 결혼을 해 아내와 자식을 고향집 마당에 남겨 두고 온 가장들이 많아, 소대장이 중계방송을 해야 할 내용들 또한 부부지간에 나누어야 할 은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답니다.

당시, 어느 소대장에 의해 소대원 모두에게 알려지고 나중에는 사단장 귀에까지 들어가 낭군님의 특별 휴가까지 얻어냈던 시골 아낙네의 편지가 있었는데, 편지지 중앙에다 다섯 손가락이 드러나도록 손의 윤곽을 그려 놓고 그 아래에 단 한 줄로 "내 손이어요, 만져주어요."라고 쓴 것이었다지요.

글쓰기는, 뜬구름 같은 생각을 붙잡아 매만지고 가다듬어 글자로 조각해 내는 행위입니다. 세상의 온갖 사상과 소통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자신만의 땀 냄새 나는 언어를 통해 타인과 나누는 일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성찰의 삶을 가꾸는 방편일 뿐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정련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는 근원적이며 유일한 대안이기도 합니다.

글쓰기 교육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기회를 많이 부여하여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쓰기교육의 입문기에 행해지는 '받아쓰기' 활동은 검토되어야 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I like pizza'를 쓰고 싶은 아이가 철차를 몰라 'I lk pza'라고 써도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잘 표현했다'고 격려해 주는 방식에 비해, 교사가 부르는 말을 받아쓰면서 글자 익히기부터 열중하는 방식은, 글쓰기의 의욕을 자체를 떨어뜨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지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학모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매일 매일 100점 맞은 받아쓰기 시험지를 휘날리며 "학교에 다녀왔습니다."고 외쳐대던 아이가 며칠째 어깨가 축 쳐져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 오길래 포근히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며 자초시종을 물었더니 울음부터 터뜨리더랍니다. 그리고는 60점, 70점 받은 받아쓰기 시험지를 어머니께 보여드릴 수가 없어 학교 화단에 묻어두고 왔다고 실토를 하더랍니다.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지를 땅 속에 묻으면서, 생각을 글로 써 보려는 마음까지 함께 묻은 건 아닐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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