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통신비 '눈덩이'

입력 2006-09-13 11:06:22

시인 유치환은 시 '행복'에서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노래했다.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보내는 슬프고 다정한 사연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편지는 이같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정겨운 다리였다. 자신의 감정을 반성하고 세련되게 하는 感性(감성) 훈련과 '인정의 끈'을 다지게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지를 많이 썼다. 도시에 유학 온 아들은 學資金(학자금)을 보내 달라며 '부모님 전 상서'를, 부모는 공부 잘하라는 답장을 썼다. 가슴 저리는 연애편지도 많았으며,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내는 일은 학생들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편지가 급격하게 줄었다. 대부분의 소식은 휴대전화나 이메일이 대신한다. 우체국 앞에 '편지를 씁시다'라는 현수막은 그런 사정을 말한다.

○…올 상반기 가정 通信費(통신비)가 사상 처음으로 외식'외박에 드는 돈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지출 중 통신비가 13조 268억 원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음식'숙박비(12조 9천630억 원)와 교육비(9조 1천38억 원), 의류'신발(8조 1천506억 원), 의료'보건(8조 567억 원) 지출액보다도 훨씬 많으며, 1995년 2%에서 껑충 뛰었다.

○…통신비가 소비지출 중 가장 큰 부분인 주거비(30조 9천255억 원), 식비(24조 4천690억 원)에 비하면 물론 훨씬 적다. 하지만 外換危機(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 통신비가 연간 8조 8천402억 원으로 음식'숙박비 지출(20조 961억 원)에 크게 못 미쳤고, 교육비(15조 2천 903억 원)의 절반 수준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엄청나게 늘어났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요금이 '구르는 눈덩이'가 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휴대전화와 이메일 주고받기가 편지를 대신하게 된 지 오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메일 방을 열고, 게시판을 들락거리는 게 많은 사람들의 日常事(일상사)가 됐다. 그러나 음란 메일'광고 등 '쓰레기더미'와 이상한 메시지, 비방과 욕설이 난무해 열어보기 난처할 때도 적잖다. 匿名性(익명성)의 폐해는 또 어떤가. 편지의 쇠락과 통신비의 급증이 우려되는 이유는 비단 이뿐이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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