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삶, 김연철] ⑦입시제도 개혁

입력 2006-09-11 08:56:48

1960년대의 초·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은 불합리한 입시제도로 인해 아주 혼탁했다. 초등학교 아동들은 세칭 일류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학교 정규 수업만 마치면 과외를 받으러 담임교사 집으로 혹은 학원으로 가야만 했다. 담임교사는 성적이 우수하고 재력이 있는 학생들만 선발하여 집에서 가르쳤다. 담임교사 집은 완전히 학원화 되어 시간대별로 또는 담임교사 집에서 숙식까지 하는 등 북새통을 이루었다. 자연히 학교 수업은 등한시 되고 교사나 학생은 오직 과외 공부에만 관심을 쏟았다.

중·고등학교도 초등과 같이 그렇게 심하지는 안 했으나 나름대로 과외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자기 집을 소유한 교원은 극소수였는데 시중에 떠도는 말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집을 사면 중등 교사는 전세를 얻고, 대학교 교수는 그 집에 사글세로 든다."고 했다. 사교육비가 얼마나 초등학교로 몰렸으면 이런 말이 나왔겠는가.

1968년 7월 15일, 교육 혁명이라 불리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가 발표되고, 그에 앞서 학교차를 해소하기 위한 중학교 평준화(교원, 시설, 재정)작업이 시행되었다. 당시 지나친 입시 과열에 따른 과외 공부를 지양하고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과 극단적인 중학교 학교차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1969학년도는 서울특별시내 중학교에, 1970학년도에는 서울을 포함 10대 도시 그리고 1971학년도에는 전국적으로 이 제도를 확대 실시하면서 학생들의 통학 편의를 위해 학군제도 도입되었다.

1974학년도에는 고등학교에 연합고사 및 추첨 배정제를 단행했다. 중학교 무시험 추첨 입학과 같이 고등학교 평준화 시책으로 과열 과외로 인한 사회적 불신을 일소하고 안정적 학원 분위기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1974년 서울, 부산에 이어 1975학년도에 대구, 광주 인천시에, 1979학년도에 대전, 전주, 마산, 청주, 수원, 춘천, 제주 지역에 이어 1980학년도에는 주요 도시 20개 지역으로 확대해 나갔다. 지역이 광대한 지역에는 학군제를 도입했으며 연합고사 성적에 따라 학군 내에서 각 학교의 성적을 고르게 배정하였다.

대학은 1962년부터 1963학년도까지 대학입학 자격 국가고사제를 실시하다가 1969학년도부터 1980학년도까지 대학입학 예비고사제를, 1981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1994학년도부터 지금까지 대학입학 수학 능력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중학교 무시험 추첨 배정제와 고등학교 추첨 배정을 한 지 3년 후에 예상대로 대이변이 일어났다. 중학교의 경우 3년 전 일류 중학교보다 늦게 신설된 중학교에서 일류 고등학교에 많은 수를 입학시켰으며, 평준화된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따라서 지금까지 일류 중학교, 일류 고등하교의 교사가 우수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우수 집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판명되어 교사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되었다. 나는 이 시기에 학교 현장과 교육청에서 이 업무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 입시제도 개혁이 학생과 학부모의 큰 고민과 부조리를 해소하고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이루는 가장 합리적이고도 과감한 시책이라 생각했다.

김연철 전 대구광역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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