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맹모들의 자녀교육)어떻게 가르치나?

입력 2006-09-05 07:06:26

▶ 엄마는 우리 선생님!

초등 4학년 인혜(10), 3학년 지원(9)이 두 딸을 키우는 주부 임은정(35·대구 칠성동) 씨. 지난달 31일 오후 찾아간 임 씨의 아파트는 사설 공부방 같았다. 거실 책장에는 이리 저리 꽂아놓고 쌓아놓은 영어 동화책, 수학 문제집, 백과사전 등 수백 권의 책이 가득했다. 남 보기 좋도록 깔끔하게만 꾸며진 공간은 아니었다.

"학원에 보내면 '가방' 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그 곳에서 공부를 잘 하고 있다는 믿음은 부모의 바람일 뿐이죠."

임 씨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있었다. '강심장 엄마'의 소신은 확고부동했다.

"큰 애가 3학년이던 작년에 '엄마, 1년만 학교 쉬면 안 될까' 하고 말했을 때는 대안학교나 홈스쿨링까지 생각했어요. 마음껏 책을 읽고 싶다는 게 이유였어요."

임 씨는 큰 딸이 일곱 살 나던 해부터 아이들의 선생님 역할을 해 왔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게 하고 영어 테이프를 듣게 했다. 아이가 영어책 읽는 발음을 테이프로 녹음해 스스로 들어보게 했다. 녹음 테이프만 100여 개다. 수학은 문제집을 구해 혼자 풀어보게 했다. 어려운 것이 있어도 좀처럼 해답을 가르쳐 주지 않고 스스로 원리를 터득하도록 시켰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대신 아이들 책 값만 월 20만 원 이상 투자했다.

'성취도 노트 활용하기' '백과찾기'는 임 씨가 아이들을 위해 고안한 학습법이다. 아이들 스스로 학습 분량을 정하고 매일 엄마에게 검사를 맡도록 했다. 영어 동화책 한 페이지씩 읽기, 수학 문제집 한 페이지 풀기, 시사·상식 주제를 골라 백과사전 찾아보기 등이다. 4학년인 인혜는 현재 5학년 2학기 수학 진도를 엄마와 공부하고 있다.

거의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 유적지, 사찰, 공연장, 극장 등에 데리고 다닌다. 최근에는 영월 책 박물관에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렇다보니 아이들은 저절로 일기를 쓰게 됐다. 임씨는 "일기 쓸 거리를 엄마가 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학원에 보내지 않는 대신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어요. 아이들도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들기까지 1~2년은 걸렸습니다. 이제 그 성과가 차츰 나타나는 것 같아요."

▶ 엄마, 오늘은 무슨 수업해요?

같은 날 대구 용산동 '와룡 배움터'를 찾았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끼리 모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키우는 곳이었다. 요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품앗이 교육'인 셈이다.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대표격인 김영미 씨는 "지난해 영어, 논술 등에 실력이 있는 5명의 엄마들끼리 서로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다가 이런 공부방법을 여러 엄마들과 나눠보자는 뜻으로 배움터를 열게 됐다."고 했다. 현재 어머니 회원은 15명, 아이들은 20여 명이다.

40평 남짓한 배움터 안에는 월요일(동화읽기/바느질 수업), 화요일(수학/영어), 수요일(함께 하는 학교/공동체 놀이), 목요일(다도/수학), 금요일(야외 놀이수업) 등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엄마들 역시 사교육 열풍에 대한 걱정이 작지 않았다.

강혜연씨는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사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싶었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엄마들끼리 모여 머리를 맞대고 힘을 북돋워주고 있다."고 했다. 강 씨 역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이곳에서 공부시키고 있었다. 강 씨는 "학원보다 자유롭고 형, 누나, 동생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곳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배움터로 와서 공부도 배우고 여럿이 축구나 다른 놀이도 한다. 인근 와룡산에 야외 수업을 가기도 하고 대학 박물관이나 동네 서원, 시민단체가 소개하는 골목탐사를 떠나기도 한다.

때 마침 와룡 배움터의 아이들은 다도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 수업 중 외래강사를 쓰는 유일한 시간이다. 찻물을 우려내는 아이들의 폼이 제법 그럴듯했다. 다도 시간이 끝난 뒤에는 퀼트에 소질이 있는 한 어머니의 지도로 바느질 수업이 이어졌다. 박지성(9) 군은 "방학 동안 한학촌과 한국전래원에 다녀온 기억이 가장 남는다."며 "엄마와 공부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고 했다.

김영미 씨는 "학교 숙제도 많은데 학원까지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며 "처음에는 학원에 보내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만한 선생님이 어디있을까'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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