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균형의 상실

입력 2006-09-04 08:50:50

어린아이들은 블록 조각을 끼워 맞추어 비행기나 혹은 로봇 등 여러 다양한 모형을 만드는 놀이를 즐긴다. 아주 어릴 때에는 커다란 블록 조각으로 단순히 높이 쌓아올리기만 하다가 성장함에 따라 작은 블록 조각으로 정교한 모형을 만들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기도 힘든 매우 미세한 조각을 끼워 맞추어 원형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모형을 재현해 낸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도 결국은 블록 조각을 맞추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사회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할 때에는 듬성듬성한 제도의 얼개만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성숙하고 복잡함이 더해질수록 신경을 써야 할 작은 일이 많이 생긴다. 작고 섬세한 제도의 조각들을 가지고 사회의 구석구석을 메워나가야 한다.

이처럼 미세 조정을 통해 사회적 제도가 다원적이고 중층적으로 포개져 쌓아 구성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성숙한 사회의 징표로 받아들인다. 대체로 우리가 성숙하다고 일컫는 사회의 경우 시장(市場)에 의거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을 보인다. 낮은 곳이 있으면 순식간에 스며드는 물처럼 이윤을 쫒는 시장 원리는 사회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포섭하는 특성을 가진다. 사회적 미세 조정이 필요한 곳에 시장 원리는 곧장 침투하여 그 효력을 발생시킨다.

일반적으로 시장 원리는 시간 전망(time horizon)이 매우 짧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사람들의 행동은 멀리 보고 움직이기보다는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즉각 결정되는 경향을 가진다. 시장 원리는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기조차 힘든 작은 블록 조각처럼 사회적 시간을 짧게 절단하여 사회적 제도를 섬세하게 구축한다. 작은 블록 조각이 하나하나 정합적으로 연결되어 커다란 하나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성숙한 사회는 단기적 시장 조정 방식을 치밀하게 얽어놓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다시 블록 조각 맞추는 놀이 이야기로 돌아가면, 왜 어린 아이는 큰 아이처럼 작은 블록 조각을 가지고 크고 정교한 모형을 만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까? 아마도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발달되지 못한 탓이리라. 가지고 노는 블록 조각이 작으면 작을수록 완성된 최종 모형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매우 미세한 작은 블록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일수록 그의 상상력의 세계에는 누구보다도 커다란 모형의 실체를 형상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성숙한 사회라고 부르는 사회는 겉으로만 보면 시장원리에 따라 매우 단기적 시간 전망에 근거하여 작동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일수록 사회 구성원 전체는 장기적 시간 전망을 공유하며 지향하여야할 사회의 전체상을 그 내부에서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아이는 어릴 때 자신의 고유한 성장 속도에 맞추어 가지고 노는 블록조각의 크기를 스스로 결정한다. 아이가 자랄수록 가지고 노는 블록 조각의 크기가 작아진다. 작은 블록 조각을 아이에게 쥐어준다고 해서 그 아이가 갑자기 큰 아이로 성숙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성숙 과정도 마찬가지일 터. 한 사회가 내재한 역사성과 고유한 발달 속도에 적절한 수준의 문제해결 방식이 있다. 미세 조정의 시장 원리는 겉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이에 걸맞은 내부의 성숙도가 함께 구비되어야 그 정합성이 유지된다.

부분과 전체 사이의 균형의 상실, 시간전망에 있어서 단기(short term)와 장기(long term)의 부조화 - 이것이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대한 물신적 숭배 현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는 장기적 시간 전망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상은 '바다 이야기' 소동을 보면서 느낀 두서없는 소회이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고 참아달라고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 한국 경제를 투기장으로 삼고 마음껏 유린한 외국자본의 횡포에서 우리는 훨씬 비싼 비용을 이미 지불하지 않았던가?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학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