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 신장투석 중인 김인설(46·동구 신기동) 씨. 오랜 세월 병마와 외로이 싸워 왔지만 이젠 곁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다. 코흘리개인 줄로만 알았던 아들 상진(가명·19) 씨는 어느새 훌쩍 자라 아버지 병수발을 든다. 든든하다. 하지만 아직 어린데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병실 창 밖을 가만히 내다보는 상진 씨. 마침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상진 씨의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진다. 앞날을 헤쳐 나갈 생각을 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곧 아버지 곁에 붙어 앉는다. 걱정만 한다고 아버지 병이 낫진 않는 법. 불편한 곳이 없는지 이러저리 살핀다.
택시운전을 하던 김 씨가 신부전증을 앓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8년. 신장투석을 받았지만 점점 몸이 약해진 김 씨는 결국 1992년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신장은 김 씨 남동생이 내줬다. 그러나 새 신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5년 뒤부턴 다시 신장투석을 반복해야 했다.
일주일에 세 차례, 한 번 바늘을 꼽으면 3, 4시간은 걸리는 신장투석. 곁에서 지켜보는 상진 씨는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아버진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투석을 해오셨죠. 소변도 제대로 못 보니 얼마나 괴로우셨겠습니까. 제겐 한 번도 내색하신 적이 없지만 정말 힘드셨을 겁니다."
결국 김 씨는 새 신장을 이식받기 위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줄을 다시 서야 했다.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되던 중 지난 20일 갑작스레 희소식이 날아왔다. 한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기증받게 됐다는 병원의 연락이었다. 너무도 반가운 소식. 다행히 김 씨의 몸에도 잘 맞는다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김 씨는 그날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갑자기 찾아온 기회라 수술은 했지만 비용 마련이 막막했던 것.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김 씨네 형편에 1천200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는 감당키 힘든 짐이었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아버질 수술대에 눕혔어요. 장기 자체를 구하기 힘든데다 몸에 잘 맞는 것은 더더욱 찾기 어렵잖아요. 아버지부터 살리고 보자는 생각에 덜컹 수술은 했지만 뒷감당이 안 되네요."
가족 중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대학 1학년생인 상진 씨 하나뿐. 병든 아버지 병간호뿐 아니라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할머니(72)를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는 지역 한 4년제 대학 체육학과 학생.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배드민턴 선수생활을 했던 터라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제대로라면 다가오는 가을학기가 2학년 2학기여야 하지만 학비를 버느라 1년을 쉬어 이제 1학년 2학기를 맞는다.
상진 씨는 휴학기간 동안 낮에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밤엔 한 스포츠센터에서 배드민턴 레슨을 해주며 700여만 원을 모았다. "일부는 아버지 병원비에 보태고 나머진 18일 신학기 등록금으로 썼어요. 그런데 이틀 뒤 갑자기 연락이 와 아버지가 수술을 받게 되셨습니다. 이미 돈은 다 써버렸지만 수술 기회는 놓칠 수 없었죠. 수술비 모두를 충당할 수 없지만 그 돈을 쓰지만 않았더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텐데…. 왜 이리 일이 꼬이는지 모르겠네요."
상진 씨의 장래희망은 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가 되는 것. 고교 시절 전국 대회에서 혼합복식 3위에 오른 적도 있는 꿈나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연습은 뒷전. 아버지 병간호와 수술비 마련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머니가 있으면 의지가 되겠지만 전 어머니 얼굴도 모릅니다. 제가 두 살 무렵 아버지와 헤어지신 뒤 연락이 끊겼거든요. 사진이라도 남아있으면 거기다 대고 말이라도 건네 보겠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서글플 뿐입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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