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못갈 곳은 없다/바바라 호지슨 지음, 곽영미 옮김/북하우스 펴냄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언제나 힘겨운 일이다. 하물며 19세기 이전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라면, 그것도 그 주인공이 여성이었다면 그 힘겨움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지도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여성들은 꽤 많았다. '세상에 못갈 곳은 없다'는 근대 각 대륙을 여행했던 여성들의 여행기를 담고 있다.
당시에는 여행이 흔치 않아 일부 계층에만 한정됐고 운송수단은 물론 도로 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을 떠나게 된 여성들은 많았다. 혁명 등의 정치적 변동으로 고국을 할 수 없이 떠나야 했던 경우도 많았지만 부정한 행실 때문에 추방되기도 했는데, 심지어는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기 위해 북아메리카로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부적절한 행위가 큰 모험으로 연결된 셈이다. 한 영국 여성은 "세상 어디에도 영국만큼 여자들이 멸시받는 나라는 없다"며 미국으로 건너갔고 애인을 구하러 해외로 떠나기도 했다. 연인의 죽음을 이겨내기 위한 여행도 있었다.
당시에도 여행사는 있었다. 1820년에는 전문 여행사들이 등장, 시장을 개척했다. 프랑스에서는 짐마차꾼, 이탈리아에서는 모험 안내인, 독일에서는 역마꾼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여행자들을 위해 운송수단과 숙박, 식사를 체계적으로 준비했고 여행자들과 동행했다. 1841년 설립된 여행사 '쿡스'는 처음에는 영국 제도를 순회하는 간단한 철도여행만 제공하다가 파리, 스위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여행지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여행사를 이용한다 해도 여성들의 여행은 순탄하지 않았다. 노새와 짐을 잃는 일이 허다했으며 죽음 직전까지 몰고간 사고에도 맞서야 했다. 또 여성이 넘어야 할 벽인 임신과 질병을 극복해야 했고 대부분이 허약하고 민감한 체질로 고통받았다. 상당수가 여행 중에 유산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타지에서 떠나보내는 경험을 했다.
결국 여행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여성들도 있었다. 살해되고 물에 빠져 죽었다. 콜레라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중동의 사막을 거침없이 내달렸던 헤스터 스탠호프는 레바논의 한 수도원에서 천천히 숨을 거두는 운명을 맞이했다.
그렇게 힘겨운 그들의 여행은 기록으로 연결된다. 남성들과 달리 여행의 명분이 필요했던 여성들은 학문적 연구에 열성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남긴 여행 기록은 당시 생활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남성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으로 남성 여행기와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예를 들면 레이디 베리는 1814년 프랑스 호텔에 묵은 후 "그야말로 동물들이 살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라는 평을 남겼다. 특히 공동 식탁에서 식사해야 하는 경험은 그에게 고역이었다. 헬레네 기카는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남장을 하고 올랐던 기록을 세세하게 적어놓았다. 이런 여행기는 당시에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책은 각 대륙별로 그 곳에 도착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았다. 하지만 유럽 여성들이 본 비유럽의 모습은 하나같이 반문명적이고 비위생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문화인류학적 시각은 부족해 보인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