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도 흘러가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추억이 생겼다.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왕년의 스타들은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지난 1987년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 최고의 미녀 탤런트로 각광 받았던 최수지. 1997년 결혼과 동시에 도미했던 최수지는 2002년 미군 군의관인 남편이 대구 모 부대로 발령을 받으면서 귀국, 드라마 '빙점'의 여주인공으로 브라운관에 잠깐 복귀하기도 했다. 현재 대구예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980년대 초반 강수연과 함께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영화배우 조용원은 벤처기업인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17살인 1984년 영화 '땡볕'으로 대종상 신인상과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신인상 등을 거머쥐었던 조용원은 일본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고 1996년 귀국해 영화잡지, 포털, 일본어 교육사이트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인기 개그맨이었던 '밥풀데기' 김정식은 마흔일곱의 나이에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06학번으로 입학해 자신의 일곱번째 학위에 도전하고 있다. 쓰나미 참사 때 자원봉사 단장으로 스리랑카에 다녀왔던 김정식은 현재 인터넷 방송국 '사랑의 소리', '라디오 21' 본부장을 맡아 불우이웃과 장애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1974년 4살로 드라마 '황희 정승'으로 데뷔, 1989년에는 '추억 속의 그대'를 히트시키며 가수 활동도 겸했던 황치훈은 지난해 외제 승용차 딜러로 변신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77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연기자, 가수, MC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김성희, '조선왕조 오백년-장희빈'에서 인현황후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누렸던 박순애, '사랑과 야망'의 재방영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차화연, 1980년대 청순가련형 여배우의 대명사였던 김도연, 1990년대 말 최고의 CF 스타였던 신주리 등은 결혼 이후 평범한 주부로 조용한 삶을 가꿔가고 있다.
18세에 데뷔, 800여편의 영화를 찍은 한국 영화의 산 증인 김지미는 환갑을 훌쩍 넘어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지난 2000년 영화인협회장에서 사퇴한 후 세간의 이목에서 사라졌다. 협회장 재직 당시 "한 여자로서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요즘 와서 너무나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지미는 요즘 두 딸 사이에서 태어난 6명의 손자 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명지전문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장미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미희는 최근 디자이너 정구호와 함께 시각장애 어린이들 개안수술 기금마련을 위한 티셔츠를 만드는 등 사회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장미희와 함께 2세대 트로이카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정윤희는 복귀설이 종종 제기됐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정윤희는 세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애마부인'으로 '원조 에로스타'로 각인되어 있는 안소영은 지난해 귀국, 활동을 재개했다. 특히 누드화보집까지 내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희라도 영화 '사생결단'에서의 열연으로 충무로를 울렸고 이대근은 가족만담극을 표방한 영화 '이대근, 이 댁은'으로 최근 은막에 복귀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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