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건설노조 '잠정 합의안' 거부 이유는?

입력 2006-08-14 10:35:18

노조 교섭단이 서명까지 한 '포항지역건설노조 단협 잠정 합의안'을 투쟁본부가 왜 거부했을까.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노조원들조차도 속 사정을 궁금해하고 있다. 포항건설노조 투쟁본부는 "토요 유급제를 포함한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지 않는 등 사측이 노조를 죽이기 위한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는 있으나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겹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중근 사망문제=집회 도중 뇌 손상을 입어 숨진 하중근 씨에 대한 사망원인 규명 및 보상 문제는 현재 한 발짝도 나아간 게 없다. 노조는 '경찰의 집단 구타에 의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찰은 '하 씨가 뒤로 넘어지면서 어딘가에 부딪혔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 씨의 사망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임단협이 타결되면 실제로 두 달이 되도록 일을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노조원들이 공사 현장에 가지 않고 집회에 올 가능성이 적다. 노조집행부는 하 씨의 죽음이 개인적인 억울한 일로 남고 자칫 현장에서 잊혀질 것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노 갈등 움직임도 보인다=포스코 본사 점거를 주도한 이지경 포항건설노조위원장 등 현 지도부는 대부분 구속 또는 수배된 상태로 어떤 식으로든지 새 집행부 구성은 불가피하다. 노조원들은 오랜 파업으로 지쳐 있고 현 투쟁노선에 대한 불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단이 하중근 사망 원인 규명 및 구속자 처리, 포스코의 손배 처리건 등에 대한 전제 없이 합의안에 서명을 하자 비상대책위와 투쟁본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노조 내부에서는 잠정합의안에 대해 노조원 찬반 투표도 부치지 않은 것은 노·노 갈등이 걸림돌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의 한 중간 간부는 "투쟁본부는 잠정 합의안을 일단 부결시킨 뒤 핵심현안 해법 마련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와 민노총 등도 변수=포스코는 단순 노조원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용을 베풀겠지만 노조 집행부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일단 손배소 액수는 3천여억 원에 이르는 간접피해액은 제외하고 포스코본사 수리비 등 직접 피해액 25억 원 정도가 검토되고 있다. 대상은 포항건설노조와 노조 지도부다. 소송이 제기되면 이지경 위원장 등 현 집행부는 모든 재산을 가압류당할 수밖에 없어 현 집행부는 임단협 타결에 앞서 이 문제도 물밑 협상안에 포함, 풀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당초는 포항건설노조만의 문제로 출발했으나 포스코 본사 점거 후 민노총이 집회 등을 주도하고 있다. 실제 서울 민노총 관계자가 포항에서 상주하며 대책을 협의하고 있고, 민노총 포항시협의회가 깊숙이 개입돼 있어 포항건설노조 투쟁본부가 민노총을 배제한 채 교섭단의 합의안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사측은 "여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초 임금 2% 인상안에서 5.2%까지 양보했다."며 더 이상 건설노조의 요구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다. 실제 일부 업체들은 '너무 많이 양보했다.'며 불만을 쏟아내 사측협의회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노조측도 절대 양보없음을 밝히고 있어 장기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타결될 때까지 집회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포항시민들은 엄청난 파업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특히 장기화되면 상당수 조합원들의 생활이 큰 고통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모 조합원은 "지금 일해도 작업현장 특성상 11월이 돼야 임금이 나온다."며 "대부분 수중에 돈이 다 떨어졌고 이달 말 납부해야 할 대학생 아들의 학비가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포항·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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