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서 욕쟁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탤런트 김수미. 그녀는 영화 '마파도'에서 욕의 절정을 보여줬다. 말문을 열면 껄쭉한 욕이 튀어나오는 진악댁(김수미 분) 앞에서 마파도를 찾은 건달과 형사는 옴짝달싹 못한다. 하지만 욕쟁이 진안댁은 속정이 깊은 할매이다.
세상엔 욕쟁이들이 많다. 어떤 욕은 사람을 모욕하고 상처주고,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욕은 투박한 정을 느끼게 하고, 삶에 활력을 준다. 마치 새빨간 거짓말과, 새하얀 거짓말이 있듯이. 무료하고 삭막한 이 세상에 웃음과, 풍자, 속정을 나줘 주는 미워할 수 없는 욕쟁이들의 이야기를 엮어본다.
◆욕쟁이 맛집 할매들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에서 40년 가까이 '새재 할매집' 식당을 하고 있는 황학순(83) 할머니. 이곳 식당에는 서민들은 물론 수많은 정치인, 고위관료, 사업가, 장성,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다. 45세 때까지 집안 살림만 했던 황 할머니는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탔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식당을 하면서 입담이 늘고 급기야 '욕쟁이 할매'로 불릴 정도로 걸쭉한 욕설을 내뱉게 됐다. 식당의 메뉴는 약돌돼지 양념석쇠구이, 산채정식 등이다. 여기에 하나더 인공조미료 대신 천연조미료인 '할머니 표 욕설'이 입맛을 돋운다.
대구 중구 삼덕3가 동부교회 주차장 인근의 '청맥식당'은 맛깔스런 음식 맛과 함께 주인 김정숙 씨의 농도 짚은 입담으로 유명하다. 재료 손질부터 음식 장만까지 직접 챙기는 김 씨는 단골이 오면 불쑥 자리에 끼어든다. 그러다가 손님이 술 한 잔 권하면(주인에게 욕을 먹기 위한 손님의 의도적 행동) 본능적으로 육두문자가 튀어 나온다. 손님이 "오늘은 왜 반찬이 별로 없느냐."고 투정을 하면 "XX하고 자빠졌네, 주는 대로 X먹지." 시간이 지나고 한두 잔 더 들어가면 점입가경. 김 씨는 상대가 대학교수, 고위공무원, 사업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가리지 않는다. 손님들은 배꼽을 잡을 만큼 맛깔 난 김 씨의 입담에 일상의 무료함과 스트레스를 잊게 된다.
대구 동구 신천동 태평양 건물 뒤편 '녹용식당'은 죽을 먹고, 욕도 먹어야 배가 부르게 된는 곳이라고 한다. 민물장어와 함께 각종 한약재를 넣어 쑨 죽은 이 집의 주된 메뉴, 밥과 추어탕은 마지막에 서비스로 나온다. 주인 강금선(66) 할머니는 금연운동이 확산되기 전인 1980년대부터 담배 피는 손님에게 욕 섞인 잔소리를 했다. 음식 투정을 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손님들도 할머니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구 중구 공평동 대구백화점 옆 골목에 있는 '경주 할매 칼국수'의 황금연(88) 할머니. 33년 동안 좋은 국물 맛을 위해 최고의 재료를 쓰고 있다는 이 곳은 주인의 입이 걸기로 소문나 있다. 황 할머니는 손님이 국수를 남기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먹을 만큼만 먹지, 다 처먹지도 못하면서 남기긴 왜 남겨!" 정이 많은 황 할머니는 거지가 많던 시절, 그들이 오면 칼국수를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욕쟁이 할머니가 이야기도 있다. 전주시 고사동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인 삼백집. 이곳 주인 할머니가 서슬 퍼런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을 욕 먹인 일이 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이 해장을 위해 수행원에게 삼백집에 가서 콩나물밥을 배달해 달라고 했다. 욕쟁이 할머니 왈, "야 이놈들아, 니놈들은 발도 없냐. 와서 처먹든지 말든지 해." 욕만 먹은 수행원이 박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직접 찾아갔다. 이 때 주인 할머니는 "이놈아! 누가 보면 영락없이 박정희인 줄 알겠다. 그런 김에 이 계란 하나 더 처먹어라."고 했단다.
◆별난 욕쟁이들
지난해 입적한 통허 스님은 '밥 퍼주는 욕쟁이 스님'으로 통했다. 스님은 생전에 대구 중구 반월당 보현사 앞 무료급식소 '자비의 집' 등에서 노숙인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줬다. 스님은 "있는 사람들이 나눠 써야 세상이 돌아간다.'며 어려운 이웃들과 지인들을 연결했다. 그가 "좋은 일 좀 하라."고 채근하면, 누구도 뿌리치지 못하고 지갑을 열었다고 한다. 신도들이 보낸 먹을 거리가 있으면 혼자 사는 노인이나 아픈 사람에게 갖다주며 "마이 들어온 거 남아서 주는 거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마이 묵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곤 했다. 도움 받는 사람이 미안해 하지 않도록 선수를 치는 것이다. 옷이 낡거나 헤진 신발을 신은 노숙인을 보면 "왜 이러고 댕기냐."며 호통을 치고 옷이나 신발을 챙겨줬다고 한다.
인터넷에 한 욕쟁이 할머니의 특이한 얘기가 있다. 올해 70세인 이 할머니는 대구의 한 동네에서 선거운동 중인 국회의원 일행과 마주쳤다. 할머니는 대통령 탄핵 사태때 부터 그 의원에게 욕을 해주고 싶던 차, '잘 걸렸다.'고 생각했다. 의원이 손을 내밀자, 할머니는 "이 더러분 손 치우소, 어따 더러븐 손 내미는교.", "한게 뭐가 있다고 낯을 내미노? 이XXX들아, 대통령 탄핵은 와 하노? 엉!." 의원의 수행원이 "할매, 노무현 대통령의 친척잉교?"라고 하자, 그 할머니 왈, "야이 짜스가,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척이마 니는 OOO 아들이가 XX야!" 의원 일행은 10분 동안 이 할머니에게 된통 당한 뒤 할 수 없이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2006년 8월 10일자 라이프매일)
김교영 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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