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앞 속수무책…쪽방촌 사람들의 힘겨운 여름나기

입력 2006-08-08 09:07:35

7일 오후 동구 율하동. 2평 남짓한 이모(78) 할머니의 방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35℃가 넘는 폭염이 이어진 지 벌써 8일째. 방안의 작은 창으로는 바깥바람의 끄트머리도 비집고 들기 힘들어 보였다.

할머니의 더위를 달래주는 건 오직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뿐. 동이 트면 공원에 갔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게 할머니의 유일한 피서법이다.

이 할머니는 "남들처럼 피서를 갈 형편도 안되는데다 찾아주는 자식들도 없다."며 "그냥 견디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홀로 남겨진 노인들과 쪽방 사람들에게 연일 계속되는 폭염은 가혹한 형벌이나 다름없다. 더위를 피할 장소도, 여유도 없는데다 끝모를 외로움과 잿빛 미래와 싸워야 하기 때문.

정신지체장애 1급인 손자와 함께 사는 김모(65·동구 용계동) 할머니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김 할머니는 6년전 자식 부부가 이혼한 뒤, 줄곧 몸이 불편한 손자를 맡아 길러왔다.

집에서 한 발짝 나서기도 힘든 할머니는 찜통 더위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김 할머니는 "오후 3시쯤 되면 햇볕을 피해 좁은 부엌 한 쪽에서 손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어야 한다."며 "점점 심해지는 허리 통증 탓에 손자 목욕시키기도 힘에 부친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서구 비산동 쪽방 밀집지역. 이 곳 사람들에게도 여름나기는 힘겹기만 하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대구 쪽방 거주자들은 1천여 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40, 50대 남성. 주로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이들은 가족이 있지만 채무 불이행자이거나 빚쟁이를 피해 따로 나와 사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현수(57·가명) 씨도 그중 한 명. 이 씨는 폭염 탓에 공사 현장마저 일거리가 없자 그대로 좁은 방안에 틀어박혔다. 한낮 더위를 피해보려 인근 복개도로로 나서지만 콘크리트 열기가 더욱 고통스럽다. 속옷 바람으로 방 바닥에 드러누운 이 씨는 "비 난리를 피했나 싶더니 폭염이 덮친다."며 "일거리도 없는데 날씨까지 푹푹 쪄대니 정말 짜증스럽다."고 했다.

운좋게 일을 하고 돌아왔다는 최인철(35·가명) 씨와 유민수(38·가명) 씨의 얼굴에는 굵은 땀이 쉴새없이 흘렀다. 조금 전까지 폭염 속에서 일을 하다 왔지만 유일한 쉼터인 방안은 이미 햇볕이 반쯤 점령하고 있었다. 최 씨와 유 씨는 뜨거운 볕이 드는 창가를 피해 방 한 구석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였다. 굉음을 내며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땀을 식히기엔 별무소득.

최 씨는 "돈이 없으면 방 안에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낫다."며 "더위가 빨리 지나가기만 바랄 뿐"이라고 했다.

더위는 이들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든데다 모기와 피부병이 극성을 부리기 때문.

김희열(52·가명) 씨는 "통풍을 위해 방문이라도 잠깐 열어놓았다간 모기들의 등쌀에 도저히 잘 수 없다."며 "워낙 벌레에 많이 물려 밤만 되면 미치도록 가렵다."고 했다.

북구 고성동의 한 여인숙에서 만난 김철현(59·가명) 씨는 "4년째 쪽방에서 살고 있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이라며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오랜 시간 누워있었더니 피부가 보기 흉하도록 짓물렀다."며 혀를 내둘렀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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