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책)청년노동자 전태일

입력 2006-08-08 07:22:28

20년 만인가. 그의 삶에 눈시울 붉힌 것이. 그의 죽음에 가슴 무너진 것이.

'청년 노동자 전태일'.

대학 신입생 시절 숨죽여 읽던 그 책을 초등학생 딸아이의 책상 위에서, 그것도 아동문고라는 이름으로 보게 됐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 책의 초판은 물론 개정판까지 벌써 수천 권 팔렸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겉모양은 그만큼 달라진 게 틀림없으니.

그러나 전태일이 그렇게도 치를 떨었던 '생존 경쟁'이라는 악마는 우리의 삶을 오히려 더 큰 무게로 짓누르고 있으니, 과연 무엇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너무 불쌍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딸아이에게 선뜻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태일에게서 삶을 배웠다던 386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인권 변호사가 대통령까지 돼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별 속에서 살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는데.

전태일이 살았던 1960년대 평화시장 같은 작업장은 이제 없다고 말해주면 위안이 될까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난이고 불행이고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 너무나 힘든 사회구조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데. 노동자 간 삶의 질 차이를 벌리고, 이를 비난하며 반목을 부추기고, 경제 위기만을 떠드는 집단은 더욱 강해졌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 또는 그 자식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193쪽)

1970년 11월 13일. 죽음을 앞두고 가진 전태일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유효할지 모른다. 그러기에 너무나 짧은 스물두 해를 살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게 분명한 것이다.

아직도 '레드 콤플렉스'의 잔재가 온전히 떨쳐지지 않은 시대에 이런 책을 내 아이에게 권해도 괜찮을까 싶다면 글쓴이의 말을 한 번쯤 곱씹어도 좋을 듯하다.

'괜한 욕심으로 투정을 부리고 있을 때, 별것도 아닌 일로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 때, 심통이 나서 형이나 동생을 미워하고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도 된 듯 슬퍼하고 있을 때, 전태일은 너희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물을지도 몰라. "너, 지금, 거기서 뭐하니?"'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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