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쑥스럽습니다. 오래 전에 낸 책이고 문단에계시는 분들이 보기에 별 것도 아닐 텐데 출판사에서 실어주니까 감사할 따름이에요.
" 수필집 '목동의 노래' 재출간을 기념해 3일 명동 집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정진석 추기경은 '쑥스럽다'는 말부터 꺼냈다.
'목동의 노래'는 신학생이 되기 전부터 갓 사제가 되었을 때까지의 추억을 담은정 추기경의 유일한 수필집이다. 천주교 월간지 '경향잡지'에 개재됐던 글을 묶어 1 969년 처음 출간됐다.
정 추기경은 다시 한 번 '보잘 것 없는 책'이라 낮추어 말한 뒤 "제가 쓴 유일한 수필이니까 신자들에게 제가 소싯적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리는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재출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일인칭 대명사 '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정 추기경은 "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는 일인칭을 쓰는 게 두려웠어요. 일인칭 대명사 '나' 속에는 분수도 모르는내 욕망이 섞일 수 있으므로 순수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제 욕심 때문에 판단이 바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을 경계하는 거죠."
일생동안 스스로 선택하기보다 하느님이 정해둔 길을 따라왔다고 말하는 정 추기경이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길을 보여 줘야 할 입장이다. 정 추기경은 모세를본보기로 삼는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이 아닌 길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았으니 이미 만들어진 길은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을 광야로 이끌었지만 그 길이 결국은 가장 안전한 길이었던 것이죠." 정 추기경은 2005년 '민족 해방의 영도자 모세' 상권을 집필하던 중 추기경에 서임 됐다. 이를 두고 정 추기경은 "하느님이 신자들에게 길을 보여줄 준비를 시키신 듯하다"고 말한다.
정 추기경은 신자들이 기도해봐야 소용없다고 불평할 때마다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해로운 것을 바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아기가 먹지 못하는 물건을 삼키려고 하면 어머니가 못하게 하듯이 하느님도 해로운 일은 못하게 한다는것이다.
"욕심에 어두운 눈으로 볼 때는 꼭 필요하고 유익해 보여도 하느님이 보기에는 해로운 것이 많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는 것이 행복해지는 조건이에요."
그러나 사람이 욕심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한다. 정 추기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안 본다'보다 '못 본다'에 가깝다고 말한다. 욕심에 어두운 사람은 볼 능력도 상실한다는 것.
"욕심이 들어찬 사람은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려고 하고 욕심을 비운 사람은 남의 장점을 보려고 합니다. 장점을 보는 사람은 주위를 편하게 하죠. 당연히 사람들도 모입니다." 추기경은 "이 책을 볼 때나마 잠시라도 편한 마음을 가지고 봐줬으면 합니다. 독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정신적인 기쁨을 느낀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욕심을 버린 추기경의 소탈함이 묻어난 목소리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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