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수퍼모델/데브라 N.맨코프 지음, 김영선 옮김/마티 펴냄
1857년 영국 옥스퍼드의 어느 가을 저녁. 가난한 마부의 두 딸은 공연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때 한 신사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에게 그림의 모델이 돼 달라고 부탁했다.
이처럼 소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당시 혜성같이 등장한 모델 제인 모리스. 지금으로 말하면 '수퍼모델'이라 할 만하다. 제인 모리스의 삶을 담은 책 '최초의 수퍼모델(마티 펴냄)'이 출간됐다.
제인 모리스는 꾸준히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외모와 패션뿐만 아니라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윌리엄 모리스와의 결혼, 그리고 불륜 때문이다.
제인을 길거리 캐스팅했던 화가는 당시 패기 넘치던 젊은 화가 로제티. 그는 형식주의를 타파하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해 아마추어 모델을 기용하곤 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제인이다.
제인은 패션과 미의 기준, 여성의 역할에 있어 시대의 중요한 코드가 된다.
엄숙주의가 팽배하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 제인은 당시 기준으로 미인이 아니었다. 작은 키에 발그스레한 뺨, 윤기나는 금발이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미인형이었다면 제인은 너무 크고 검었으며 강렬했다.
코르셋으로 상체를 죄던 패션도 거부했다. 제인은 느슨한 실루엣으로, 몸의 곡선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옷차림을 즐겼다. 처음에는 비난받았지만 곧 제인의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는 의복개량 운동으로 이어졌다.
라파엘전파(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미학적 단순성과 도덕적 성실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화가들)화가들은 제인을 모델로 한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고, 여성들은 제인의 초상화를 찾아 가며 그녀의 스타일을 모방했다. 나른해 보이면서도 우아한 자태, 열정적인 표정이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정작 대중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그녀의 위태로운 결혼과 불륜관계다.
진흙 속의 보석을 발견한 것은 화가 로제티였지만 제인은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인은 윌리엄을 사랑하지 않았다. 윌리엄은 평생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그림과 모든 가구들에 제인의 이미지를 그려넣었으며 그녀의 자수를 이용한 디자인을 했다. 하지만 정작 제인의 마음은 로제티에게 끌렸다. 모리스가 해외에 나갈 때면 둘은 한집에서 자유롭게 즐겼다. 슬프게도, 모리스 역시 이 둘의 관계를 인정했다. 이를 인정해야만 제인을 곁에 둘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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