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파고] ④희망은 없나

입력 2006-07-27 07:41:24

2001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5년 가까운 표류 끝에 중단됐다. 이로써 국내 농업분야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수입 농산물 홍수의 위기를 잠시나마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수만 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시장 개방은 이미 대세이며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협상에서 미국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DDA협상 결렬로 약간의 여유는 생겼다. 하지만 남아있는 시간은 많은 게 아니다. 개방화시대에 맞설 수 있는 우리 농업의 체질 강화를 위해서는 서둘러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은 탓이다.

■친환경으로 차별화하자

객관적으로 미국의 농업경쟁력은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낫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높은 수출경쟁력을 갖고 있는 품목은 238개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이 모두 취약한 것은 아니다. 고추·밤·인삼 등 비록 35개 품목뿐이지만 일부 품목은 미국에 비해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친환경 농산물은 수입 농산물을 이길 수 있는 유효한 카드로 꼽히고 있다. 고품질의 유기농산물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데다 시장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주 봉현면 소백산 옥녀봉 기슭의 소백산환경농원은 7천여 평에 무농약 사과를 재배한다. 이 곳 나무잎들은 농약 대신 석회보르도액을 살포, 다른 과수원과는 달리 희뿌옇다. 사과 봉지도 씌우지 않았다.

농장 대표 김유신(38) 씨가 무농약 사과재배에 도전한 것은 2003년. 우연히 경북능금조합에서 펴낸 '능급조합 80년사' 책을 보다 병해(病害) 일지를 발견하면서부터다.

"1940년 이전에는 농약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선조들은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지었던 것이죠. 요즘은 사과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사과공장입니다. 상품의 질보다 경제성만 따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보니 경쟁력을 잃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무농약 인증을 받아 무농약사과 전량을 한 상자(15kg)당 10만 원에 판 김씨는 "최근 친환경단체 등 선도농가들을 중심으로 정리되고 있는 무농약재배기술이 농가에 확대보급된다면 농산물시장이 개방되더라도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블루 오션을 찾아라

남과 똑같은 것을 생산해서는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격변하는 세계 농업환경에 걸맞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주위에는 적극적인 연구와 아이디어를 통해 블루 오션(blue ocean) 을 개척하는 농민들이 서서히 나타타고 있다.

청도군 풍각면 풍각농공단지에 자리잡은 청도와인(주)의 하상오(47) 대표도 개척자의 한 사람이다. 400평 규모 공장에 들어서면 1만ℓ짜리 발효·저장탱크 20개가 감와인 특유의 향기를 풍긴다. 가용탱크 1개당 750㎖짜리 와인 1만3천여병을 생산한다. 납작하면서도 씨가 없는 청도반시가 화려하게 변신하는 곳이다.

하지만 시작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2001년부터 2년간 술도 아니고 식초도 아닌 실패작을 숱하게 만든 끝에서야 2003년 5월 첫 제품을 출시했다.

하 씨는 "FTA에 맞서는 길은 과일도 가공품으로 내수와 수출을 늘려야 한다."라며 "감으로도 외국산 와인에 맞설 수 있다는 아이디어 하나가 농가 소득향상과 와인 수입 대체 효과를 기대하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주 화북면 입석리 청화산농원에서도 '자신감'은 탄생하고 있다. 이 곳은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기만 한 블루베리나무 1천500여 그루를 갖춘 국내 최고의 블루베리 농원. 이 곳 임정도 사장은 "블루베리는 kg당 4만 원의 고소득 작목이지만 국내에서는 토양이 안맞고 묘목을 쉽게 구하지 못해 불모지상태"라며 "포도나 사과 등 FTA로 인해 시장 불안을 느끼고 있는 과수농들이 블루베리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밖에 영천 고경면 삼색감자작목반의 '삼색감자', 사과와인을 개발해 연간 200만 달러를 수출하는 의성 '한국 애플리즈', 머루와인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봉화 '에덴의 동쪽', 등도 남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성공의 결실을 맺고 있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는 서비스농업이다

유명 와인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Napa valley)의 스털링 포도원(Sterling vineyards)은 연간 관광객이 끊이지않는다. 입장료만 20달러에 이르지만 이 곳을 찾는 이들은 연간 수만 명을 헤아린다. 대부분 세계 일류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맛보러 온 관광객을 위한 와인 맛뿐 아니라 관광객을 위해 설치한 케이블카 등 섬세한 배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농촌의 소득 향상을 위한 또 하나의 대안은 서비스농업 강화이다.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른 농업소득을 보충할 수 있도록 농촌체험관광 등을 활성화시켜 농외소득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경북의 경우 지난해 농가당 농외소득이 699만5천원으로 전국 9개 도 가운데 7위에 그쳤다. 이는 전년도 646만8천 원(9위)보다 다소 늘긴 했지만 제주도(1천849만5천 원), 경기도(1천838만6천 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이다.

경북도내에는 현재 농림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 15곳을 비롯, 54개의 체험마을이 조성돼 있다. 올해에도 9개의 녹색농촌체험마을이 추가로 지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국적인 명성을 확보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수도권에서 멀다는 지리적 한계도 있지만 차별화되지못한 탓이 더 크다.

대구경북연구원 농림수산연구팀 이상호 박사는 "마을 특성에 따라 사업초기부터 차별화된 전략을 세워야 적은 비용으로 성공할 수 있다"라며 "성공사례 마을을 단순히 모방해서는 높아진 도시민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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