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내몰리는 서민들 "끝이 안보인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렵다고 한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앞으로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라 했다. 서민들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정부 비판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쳐 더 이상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포기하고 있다.
2006년 여름,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몹시 어렵다. '다시 10년 전 외환위기(IMF) 상황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한숨도 나오고 있다. 벌이가 없어 빚더미에 내몰리고, 기름값 폭탄으로 주머니가 비어가는 서민들. 이들의 삶 얘기를 3차례 걸쳐 싣는다.
작은 건설업체에서 경리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신모(38·여) 씨. 그의 월소득은 100만 원 남짓.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3년 전까지만해도 한달에 300만 원을 버는 어엿한 금은방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2003년 이후 경기가 꾸준하게 추락하면서 금은방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남편은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올 초, 신 씨도 결국 금은방을 접었다. 파리만 날리는 장사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신 씨는 이후 남편과 함께 다단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단계 물품 구입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신용카드 돌려막기와 사채까지 손을 댔고 빚은 점점 늘기만 했다. 결국 신 씨는 파산 신청을 하고 토·일요일도 제대로 없는 고된 경리사원 생활을 시작했다.
신용불량자 박모(35) 씨에게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건설경기가 반짝 호황을 누렸던 지난 2003년. 쌀가게를 운영하던 박 씨는 건설 현장 식당에 쌀을 대면서 목돈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건설 경기가 과열이니 잡아야겠다."며 부동산 규제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박 씨의 사업도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현장 식당들이 하나 둘 쓰러지자 외상으로 내줬던 쌀값 2억여 원을 떼이고 만 것.
박 씨는 "빚을 줄이기 위해 아내와 위장 이혼을 하고, 사채 2천만 원까지 끌어다 썼지만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다."고 울먹였다.
식당을 하던 김모(42·여) 씨 역시 결국 사채에 손을 내밀었다. 평생을 일궈온 식당은 오랜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6개월 전 문을 닫았다. 살고 있던 집조차 내놓고 월세를 전전하고 있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는 지역의 4년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딸아이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300만 원을 사채로 빌린 뒤 결국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서민경제 어려움이 가중되면 은행과 사채시장에는 생활비나 급전마련을 위한 발길이이어지고 있다.
대구은행에 따르면 올 1/4분기 가계 대출은 3조 3천60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조 743억 원)에 비해 8.6%가 증가했다. 시중은행의 한 대출 담당자는 "올 들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500~3천만 원 사이의 소액 신용대출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찾는 사채 시장의 경우, 소액 가계 사채가 지난해에 비해 30% 가량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사채업자 최모(33) 씨는 "보통 300~3천만 원 정도를 빌려가지만 사채업자 1명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7, 8명의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리기 때문에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했다. 그는 또 "이 때문에 돈을 빌린 뒤 잠적하거나 위장 이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파산인생'을 늘리고 있다. 대기업 중역 출신인 남편의 명예 퇴직과 함께 의욕적으로 식당을 열었던 김모(35·여) 씨. 그러나 얼마 못 버티고 식당문을 닫았고 김 씨는 값나가는 가전제품을 모두 내다 판 뒤 월세로 옮겨야만 했다. 김 씨는 "아무리 일을 해도 생활비를 맞추기 조차 힘들어 결국 사채로 300만 원을 빌려 썼다."고 한숨쉬었다.
김 씨처럼 식당문을 닫는 경우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요식업협회 대구지부 서영일(46) 사무국장은 "현재 폐업 업체가 개업업체 수를 앞지른 상태"라며 "기존 대형 음식점도 요즘 유행하는 성인오락실 등으로 업태를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파산서민들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양모(48·여) 씨는 남편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지난 2001년 남편의 금형공장이 자금부족을 겪자 신용카드 5개로 돌려막기를 하며 사채까지 끌어썼던 양 씨.
그는 결국 살던 아파트까지 경매로 넘겨주고 월세 10만 원 짜리 단칸방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양 씨의 월 수입은 고작 50만 원. 그러나 빚은 1억 3천만 원이나 된다.
방사선사 김모(47) 씨 또한 부인의 미용실에 손님이 뜸한데다 다니던 병원까지 잇따라 부도나면서 무너졌다. 김 씨는 지난 2000년 다니던 병원이 부도나면서 5개월치 임금을 받지못했고 그 다음에 취직한 병원까지 지난해 7월 부도나면서 큰 빚을 지고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에 따르면 공단에서 법적 대리를 해 준 파산신청자 수는 2003년 전무했으나 올 상반기에만 140건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곳 노기홍 고객지원팀장은 "외환위기 파고를 간신히 넘기며 살아남았던 서민들이 살아나지 못하는 경기상황 때문에 다시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찾아오는 사람들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와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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