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방(幇)이란 비밀결사나 패거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19세기 닝보의 양복재단사들도 '홍방(紅幇)'으로 불렸다. 인셴(은(땅이름 은+縣 )과 펑화(奉化)지역의 재단사들이 "붉은 머리 파란 눈"의 외국인을 위해 양복을 재단하고 만들었다며 '홍방'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친척들로 집단을 이뤄 자신들만의 재단기술을 전수하고 발전시켰다.
홍방은 낙후된 중국전통 복장디자인을 개혁, 가장 먼저 서양의 일체식 디자인방식을 도입했고 각 부분별로 디자인하고 재단하는 기술도 개발하는 등 기술수준이 뛰어났다. 이들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양복을 만들었다. 중국에서 양복점을 처음으로 연 것도 홍방이었고 복장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양복재단에 관한 책을 처음으로 저술한 것도 이들 홍방이었다
'인민복'은 1905년 일본에 있던 유명한 '홍방' 재단사 장팡청(張方誠)이 중국의 국부로 불리는 쑨원(孫文)'선생을 위해 일본 학생복을 개량해 만든 것이다. 소매의 단추 3개로 '삼민주의'를 상징하는 등 시대정신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쑨원이 입어서 중산복으로 불린 인민복은 이후 중국혁명을 상징하는 복장으로 자리잡았다. '홍방'은 이후 상하이를 기반으로 홍콩은 물론, 전 중국대륙으로 진출했고 해외로는 일본과 동남아, 유럽까지 나아가 홍방의 명성을 드높였다.
'신중국' 건국 후 베이징에 진출한 홍방 재단사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조우언라이(周恩來) 총리, 류샤오치(劉少奇) 허룽(賀龍) 양샹쿤(楊尙昆) 리시엔녠(李先念) 등 중국 주요 지도자들의 양복을 도맡아왔다. 이들 베이징에 거주하는 홍방은 대부분 츠시(慈溪) 출신이다.
닝보가 중국 현대복장의 본고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이 홍방 때문이다.
닝보는 이같은 중국 복장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 '닝보 복장박물관'을 열었고 이를 통해 세계에 닝보의 복장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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