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美…마음을 채우고 푸냐? 먼저 비워라!

입력 2006-07-22 08:50:33

봄꽃이든, 여름꽃이든 여유를 가지고 꽃향기를 맡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바쁘고 복잡하게 살아가다 보니 하고 싶고, 갖고 싶은 욕구가 커져 집착이 됐다. 이젠 집착을 덜어낼 때다. 버려야 새로운 것도 채울 수 있는 법. 단조롭게 살면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등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며 뺄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백복윤(48·대구시 중구 청사관리팀장) 씨는 올 여름휴가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보냈다. 4박5일간 절에서 하는 여름수련법회 '참 나를 찾아서'에 참가, 마음을 수양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송광사 사자루에서 힘겹게 백 씨를 만났다. 그는 일절 말을 하지 않는 묵언(默言)수행 중이었다. 그는 "조용한 산사에서 말없이 수행하고 정진하니 세상 욕심, 번뇌가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다."며 취재수첩에다 글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해줬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사는 사람 1순위로 평가되는 백 씨는 "복잡한 생각을 비우면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며 "승진, 재산 등 세상 욕심이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라고 했다. 백 씨는 가끔 가족들과 함께 산사에서 맨발로 숲 길을 조용히 걷기도 한다. 이들에겐 이 시간이 가장 여유롭고 행복하다.

'남산동 딸깍발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윤원돌(61) 씨. 대구시 중구 남산동 향교 근처에서 20여 년간 책과 함께 살아온 그는 지난달 경북 영천시 삼부동 한 숲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남산동에서 살 당시 3평 남짓한 그의 다락방에는 붓글씨로 쓴 한지와 동양화, 사서삼경 등 각종 경서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젊어서부터 '배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직장을 가지지않고 다락방에서 붓글씨와 경전공부에만 매달려왔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주례와 교양강좌 등을 통해 봉사의 길로 나서기도 했지만 이 역시 무료였다. '무소유' 인생의 그가 '배움'을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천으로 옮겨간 그는 "노후의 삶 역시 숲 속에서 조용히 맘을 비우고 사색하면서 배우고 또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밝혔다.

윤원돌 씨는 지난달 이사할 때 옮긴 물건이 책과 옷 몇 벌 뿐이었다. 3평 남짓한 다락방에 살다 보니 짐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 필요없는 물건은 다 버렸기 때문. "가지고자 하는 욕심보다 없는 어려움을 벗삼아 마음을 정결히 하고 사는 것이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물질적 넉넉함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를 즐겨라.'고 가르친다.

권대용(55·대구시 환경녹지국장) 씨 역시 검소하게 살면서 인생을 풍요롭게 살고자 노력한다. 고위 공직자임에도 20평대 시영아파트에 15년간 살다가 지난해 새 아파트를 마련해 이사했을 정도. 이사갈 때도 살림에 필요한 물건 외에는 대부분 버렸다. 권 씨는 주변에서 문화 마니아라 부를 정도로 삶을 즐기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은 가지기 위한 것보다 충분히 즐기고 누리기 위한 것.'이라는 개인적 삶의 철학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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