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재판부 석명권 행사…검찰과 설전

입력 2006-07-21 11:41:31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 항소심 속행공판에서 재판부가 검찰에 "배임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위한 사실관계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혐의 입증을 촉구하는 석명권을 행사하면서 이례적으로 검찰과 설전이 벌어졌다.

서울고법 형사5부(이상훈 부장판사)는 20일 열린 속행공판에서 "검찰은 두 피고인이 전환사채(CB)의 발행 결의와 배정, 인수, 주식 전환 등의 과정을 통해 이재용 씨 등에게 CB를 저가 배정하는 데 관여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며 구체적 사실 관계를 밝히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검찰 기소내용에는 배임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사실은 들어있지만 △두 피고인이 CB 발행 및 배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권한 기존 주주와 최소한의 의사연락을 통한 공모는 없었는지 △CB가 이재용 씨 등에게 인수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 등 주관적 요건에 대한 입증은 없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규칙상 재판부는 소송관계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석명권을 행사해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사실상·법률상 사항에 관해 석명을 구하거나 입증을 촉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검찰은 문제 부분을 석명하겠다며 "허태학·박노빈 씨는 중앙개발(옛 에버랜드) 주주 상당수가 CB를 인수하지 않을 것을 인식하면서도 별다른 자금조달 수단을 강구하지 않고 CB 발행을 추진했다. 또 CB의 적정 가치에 대한 판단도 없었고 이사회의 CB 발행 결의에도 하자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재용 씨 등이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에버랜드의 지분을 늘려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고 직접 주식양도에 따른 세금 추징도 피하기 위해 그룹이 CB 발행을 결정했으며 헐값에 지분이 이전된 점을 강조해 이것만으로도 배임 혐의가 입증된다는 논리를 폈지만 재판부는 공모의 고의성 등 보다 엄격한 혐의 입증을 요구한 셈이다. 검찰이 기존 논리를 반복하면서 재판부와 법률적 쟁점의 판단을 놓고도 공방을 이어갔다.

검찰이 추가 자료를 제출할 것이 없고 주주들의 실권 과정은 입증이 어렵다고 거듭 입장을 밝히자 재판부는 "1심 판결에는 다소 논리적인 비약도 보인다. 1심은 이 사건을 '주주 우선 배정'을 가장한 3자 배정이라고 인식했지만 그 판단이 맞는지는 따로 판단할 것이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어차피 실권은 법인의 기관을 이루는 자연인이 하는 것이다. 실권한 각 주주회사에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실권을 한 것인지, 어떤 경위로 두 피고인들이 그런 과정을 알았다는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상훈 부장판사는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CB 발행 결의 당시부터 기존 주주의 실권이 예정돼 있어야 하고 실권을 예상한 근거도 필요하다. 공소장 내용을 명확히 하라는 취지로 석명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8월 24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