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강수량 마을 하상정비 잘돼 되레 멀쩡
온 삶을 땅에 기대고 있는 농민들에게 자연 재해는 곧 바로 절망에 다름 아니다. 태풍 에위니아에 이은 장마전선의 폭우는 농민들에게 절망을 남겼다. 그러나 준비된 농민들은 그나마 절망속에서 다시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폐허가 된 자리=수마가 할퀸 자리는 폐허였다. 지난 16일 시우량 38.5㎜의 폭우가 쏟아진 봉화군 물야면 일대는 곳곳에 크고 작은 산사태와 농로 유실, 침수 등으로 어디까지가 농경지인지 구분 하기가 힘들었다.
비가 소강상태를 보인 19일 오후, 지난 16일 산골짜기에서 밀려온 큰물로 산사태가 발생해 농경지 1.5ha가 유실된 물야면 오록리의 농경지는 황토 빛 흙더미로 뒤 덮여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고 응급복구로 파 놓은 배수로엔 흙탕물만이 흘러내렸다. 마을 주민 권모(61) 씨는 "갑자기 하늘이 뚫린 것 처럼 폭우가 쏟아져 물 난리가 났지만 그나마 농작물 피해가 적어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집 뒷 산에 사태가 나 쓰러진 나무를 잘라내고 흙더미를 걷어올리느라 분주하던 김모(54) 씨 부부는 "비가 계속와 대충이라도 치워놔야 다시 피해를 입지 않는다."며 "집안까지 물이 들어차 밤사이 물을 퍼내느라 잠을 한숨도 못잤다."고 했다. 그러나 소화천이 넘쳐 농로 40여m가 유실된 물야면 압동1리는 계속되는 장마비로 아예 응급복구를 포기한 상태였다. 이 마을의 장철수(47) 씨는 "비가 계속와 응급복구는 소용이 없다."며 "비가 멈추면 밭에 농약도 쳐야하는 등 일이 많아 빨리 복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긴박했던 상주 낙동면=상주 낙동면 신상리 강창교 인근에서 매운탕 집을 하는 김태현(43) 씨는 지난 며칠간 밤 잠을 못 이뤘다. 지난 16일 오후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강물에 식당을 통째로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왠만한 장마에도 식당 안까지는 물이 들어차지 않았지만 지난 16일 저녁 7시쯤 상주 낙동 신상리와 상주 중동면을 잇는 강창교가 물에 잠겨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되면서 붉은 황톳물이 식당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18일 상주 낙동면 낙단교 부근 낙동강 수위가 홍수경계 수위인 7.5m 아래로 떨어져 홍수주의보가 해제되는 등 강물이 조금씩 줄어들자 김씨는 식당 내부에 들어찬 물과 흙을 퍼내느라 굵은 빗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종일 비지땀을 흘렸다. 아직도 출입로는 붉은 황토빛 강물에 잠겨있어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를 타고 식당으로 드나들 수밖에 없다.
특히 낙동강물의 역류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식당 인근에 조성된 배수로 수문을 열지않는 바람에 번개들 수십ha가 물에 잠기면서 강창교 입구에 자리한 휴게소도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휴게소 주인 성모(47) 씨는 "닫힌 수문때문에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휴게소 뒷편으로 밀려들었다."며 "조금만 더 많은 비가 내렸다면 휴게소가 통째로 물바다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도내 최대 강수량 보인 곳은 오히려 괜찮아=경북 도내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 울진 북면 하당리는 예상과는 달리 평온한 모습이었다.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쏟아진 하당리의 강우량은 무려 411.5mm. 자동차 윈도우 브러쉬를 최고 속도로 돌려도 앞이 잘 안보일 정도의 폭우가 연일 쏟아진 셈이다.
그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가는 폭포수같은 강물에도 하천 제방은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 주택은 커녕 농경지도 하나 침수되지 않았다. 울진 군청 하당 출장소 장성중(53) 소장은 기자를 보며 "바쁜데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요. 여긴 비 피해 하나도 없구마."라고 했다.
이 동네 터줏대감 이범석(55) 씨는 철저한 하상정비와 수해복구 덕이라고 했다. 그는 수년 전 태풍 '매미'와 '루사' 땐 물난리가 났지만 그 뒤 하상을 정리해 장애물을 없애 물이 그냥 빠진다고 했다. 성실한 복구도 이번에 피해를 입지 않은 데 한 몫했다. 기존의 다리는 강바닥과 맞닿을 정도로 낮았지만 새로 놓은 다리들는 길쭉하게 높게 놓아 부유물이 떠 내려와도 걸리지 않게 했다. 또 3, 4일 동안 고루 비가 내린데다 태풍이 아니었던 탓에 바다와 접한 강 하구가 막히지 않아 물 빠짐이 좋았던 것도 다행이었다.
울진군 전광민(46) 총무담당은 "하룻 동안 400여mm가 쏟아졌다면 이 곳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태풍이 불면 해일이나 높은 파도로 하천의 물이 강물이 역류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이주·엄재진·마경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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