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석] 오늘보다 내일 더 가치있는 신문을

입력 2006-07-20 07:22:43

연습의 막바지에 이른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습장에서 배우들의 허기진 울림이 나온다. 연출자는 이 소리가 들릴 쯤이면 연습장 한 켠에 놓여있는 도시락을 풀 시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자! 밥 먹고 합시다.'라는 외침과 함께 극단의 후배들이 신문지부터 바닥에 깐다. 연습장 마루 바닥에 일렬로 깔려지는 때 지난 신문지. 온전한 상태로 혹은 반은 찢기어진 모양을 하고 마루바닥에 널부러 진다.

신문은 하루살이다. 매일매일 오는 신문의 생명력은 新(신)이라는 글자가 주는 의미처럼 24시간이 지나가면 더 이상 신문이 아니다. 그래서 정보의 속도와 사실성이 신문을 판단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 하루만에 신문은 뜨거운 라면의 받침대로, 도배 종이로, 이사를 할 때 가재도구를 꾸리는데 쓰이는 등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으로 더욱 소중(?)하게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어쩌면 신문은 하루가 지나면 더욱 찬란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단 하루가 우리가 신문을 신문으로 만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정치·문화·사회 모든 면에서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인 매일신문이 지역사회에서 가져야 할 가장 큰 임무는 무엇일까?

기사의 사실성, 혹은 빠른 속도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는 언제나 빠른 속도의 정보를 습득한다. 그래서 신문은 속보성에서는 점점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매일 매일신문을 보는 이유는 사람냄새 나는, 대구·경북의 냄새가 배어나는 이야기를 보고 듣기 위해 구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들은 때 지난 신문지 위에 앉아 밥을 먹는다. 배가 어느 정도 포만해 질 때면 이제 밥상 아래의 신문활자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친구를 위해 자기 신장을 떼어준 이야기, 어선화재를 막은 군인들, 자원봉사자 이야기 등 때 지난 기사를 읽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언제? 어디서?' 하며 새삼스레 날자와 장소를 확인한다.

때 지난 신문 기사. 그런데도 그것은 감동으로 우리들에게 다가 온다. 甲年(갑년)을 맞이한 매일신문에게 바란다. 예술이 작품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소통하듯이 신문 또한 언제 읽어도 흐믓하고 감동적인 기사를 많이 담아주길.

그리고 물론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하는 파수꾼과 소금의 역할도 잊어서는 않되겠다.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 더욱 가치있는 매일신문이 되기를 바란다.

이상원(대구시립극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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