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영기업의 천국 저장성] ②항구도시 '닝보'

입력 2006-07-17 07:47:28

'저장성(浙江省)에는 거지가 없다.' '저장성에서는 '라오반'(老板·사장)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종업원으로 일하다가도 돈이 조금 모이면 창업에 나서는 것이 저장사람이다.'

사실이다. 외자 유치를 통해 첨단산업기지로 거듭나고 있는 장쑤성(江蘇省)과 달리 저장성 경제는 민영기업가들과 중소규모 상인들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 민영기업가들이 일군 안경과 라이터, 의복과 헤어드라이어, 가정용 전압기 등의 소형 가전제품 공장들이 저장성 곳곳에서 특화단지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저장성은 '시장대성'(市場大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크고 작은 도매시장이 발달한 상품집산지다. 저장성 통계국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저장성에는 4천700여 개의 도매시장이 있으며 그중 연간교역액이 1억 위안(元) 이상인 시장이 497개, 100억 위안 이상은 9개나 된다.

이우(義烏)의 중국소상품성은 '세계의 남대문시장'의 명성을 굳히고 있고, 샤오싱(邵興)의'경방성(輕紡城)'은 원단시장으로는 세계 최대규모다. 닝보(寧波)는 중국 브랜드 남성복 생산기지이며, 인근의 셩저우(山+乘州)는 세계 넥타이시장의 70%을 생산하고 있는 넥타이단지로 유명하다. 항저우(杭州)는 여성복, 후저우(湖州)는 전국 최대 실크생산기지다.

원저우(溫州)는 세계 최대 라이터생산기지다. 다후(大虎), 웨이리(威力) 등 유명상표는 물론 1천여 개의 라이터공장이 집중돼 있다. 쟈싱(嘉興)의 피혁·목제품과 러칭(樂淸)의 저압전기제품 역시 중국 최대규모. 타이저우에는 지리(吉利)자동차집단이 있다. 위야오(余姚)는 중국 최대의 플라스틱시장이다

작은 것에서 시작, 시장을 만들고 규모를 키워 세계적인 시장을 만드는 것. 이것이 저장상인들이 세계시장에 우뚝 서게 된 비결이다. 인구 5천만 명에 한국과 비슷한 면적. 활발한 상인정신. 저장성은 중국에서 가장 한국과 닮은 성(省)이다. 그래선지 만나는 저장사람들마다 한국에 대해 적극적인 호감을 표시했다.

■닝보(寧波)

저장성 성도는 항저우지만 경제는 닝보(寧波)가 앞선다.

닝보는 항구도시다. 항저우만을 사이에 두고 상하이와 마주보고 있다. 상하이와의 직선거리는 150km. 항저우만 해상대교가 상하이와 2시간경제권으로 연결하면 닝보는 저장성의 상하이로 도약할 것이다. 사회과학원이 2005년 발표한 중국 내 도시경쟁력 순위에서 닝보는 상하이와 션전 광저우 베이징 항저우에 이어 6위에 올랐다.

닝보의 경쟁력은 기업관리경쟁력과 항만시설에서 나온다.

닝보항은 중국 4대 심항(深巷)의 하나로 5천TEU급 컨테이너선박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자연조건으로는 상하이항을 능가한다. 지난 해 2억3천만t의 화물과 400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면서 중국 제2의 수출입항만의 자리를 고수했다. 올해부터 항만 운영을 8천만t 규모의 인근 조우산(舟山)항과 통합하면서 상하이항과 미묘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해운사 관계자들은 "닝보항은 상하이항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시간당 처리능력도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로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닝보공항도 지난 해 국제공항으로 승격했다. 닝보-서울 간 직항노선도 '국제선'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4월 개통됐다. 7월 이후에는 중국동방항공뿐 아니라 대한항공도 취항하게 될 것이라고 공항 관계자가 말했다. 닝보공항의 천준쥐(陣遵擧) 총경리는 "이 공항이 중한 양국 간 교류중심이자 통로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닝보와 한반도와의 교류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천 총경리는 "닝보공항은 중국내 147개 공항 중 28위를 차지할 정도로 안전하다. 앞으로는 닝보를 해상물류기자뿐 아니라 항공물류기지도 갖춘 물류허브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통해 항공과 해상물류기지를 겸비한 물류허브로 만들겠다는 닝보시의 야심찬 전략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6월 9일 '제8차 저장투자무역상담회'와 '제5차 중국국제일용소비품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닝보국제회의전람중심(컨벤션센터). 저장성 정부가 주관하고 있는 투자상담회 전시장에서는 저장성의 11개 도시는 물론 한국과 일본 독일 등 전세계 10여 개국도 함께 투자유치활동에 나서고 있었다.

이번 양대박람회의 주제는 '합작', '호리(互利)', '공영'. "합작을 통해 서로 이득을 얻고 윈-윈(win-win)하자."는 뜻이다. 박람회 참여 기업도 저장성뿐만 아니라 상하이와 쑤저우(蘇州) 광저우(廣州) 등 20여개 성(省)으로 확대됐다. 한국에서 철수한 '까르푸'와 일본슈퍼마켓그룹 등이 참가하는 등 100여 개 국가의 8천여 명이 구매에 나섰다.

이우에서 무역상을 하고 있는 박상신 씨는 "예전에 비해 출시된 소형가전제품들의 기술수준이 높아졌다."면서 "한국에 맞게 제품디자인을 하고 OEM주문을 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람회 관계자는 "국내정품과 명품 등의 상품을 통해 중국 최고의 일용소비품 박람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 박람회와 투자상담회를 통해 세계가 저장을 이해하고 저장이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놀랍게도 박람회에는 북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지난 해는 1개 부스밖에 설치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6개의 부스를 만들었다. 제4전시관. '조선릉라도무역총회사'등의 간판을 내건 북한부스들이 건강음료와 의복, 기계류 등을 전시하고 바이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닝보시는 이같은 박람회를 통해 닝보를 세계로 알리고 있었다. 8차에 이른 '무역상담회'와 5차 소비품박람회뿐외에도 4개의 국제적인 박람회를 더 열고 있다. 중국 최대 복장축제로 성장한 '국제복장축제'(10월)와 중국국제기계공업전시회(3월), 중국플라스틱박람회(위야오·3월), 국제주택제품박람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닝보에서 한국기업은 여전히 낯설다.

삼성중공업과 LG화학이 투자한 현지공장이 있지만 대중국 투자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인의 진출은 초보단계다. 진출한 한국기업은 70여 개. 상주 한국인은 유학생을 포함, 250여 명에 불과하다. 닝보의 투자환경이 중소기업이 투자하기에는 녹록하지 못한 것도 투자부진의 원인 중 하나다.

전국 최고의 부촌(富村)답게 공장부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고 종업원들의 평균임금도 동북지역에 비해 400~500위안 높은 1천500위안 안팎이다. 닝보 한국상회의 김인열 총무는 "공장부지가 풍족하지 않은 편이지만 저장에서는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곳에 투자할 때는 중국 다른 곳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곳에서도 삼성과 LG는 지역 최대 세금납부기업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특히 LG용흥화공의 정태균 부장은 "LG화공은 지난 해 닝보시로부터 최대 세수기업 등 5개의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LG화학이 닝보에 투자한 것은 중국 제2의 플라스틱시장인 위야오(余姚)가 가까운데다 닝보 전하이(鎭海)항은 중국 최대의 화공부두를 갖추고 있는 등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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