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4기 자치정부와 시민운동

입력 2006-07-13 07:33:15

'5.31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이달 초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이 주어진 4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이후 4번째 자치정부들이 출범한 것이다. 부활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이만하면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다. 국제기구나 학자들의 분석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 1987년에 이른바 민주주의 '이행'이후 중앙과 지방 모두에서 빠르게 '공고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총론적 시각에서는 그렇지만, 막상 자세히 내부를 들여다보면 부끄러운 문제점들이 또한 적지 않다. 우선적으로 지적 되고 있는 문제 가운데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행정능력 부족과 부패 문제가 포함된다. 부정부패의 문제는 특히 심각해서 불법행위로 기소된 자치단체장들이 대략 제1기에는 10명 가운데 1명, 제2기에는 4명 가운데 1명, 그리고 제3기에는 3명 가운데 1명에 달했다.

물론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자치단체장들이 기소된 사실을 놓고 그에 비례하여 지방에서의 부정부패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불법행위에 대한 보다 엄밀한 적발과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자치정부에는 '지방토호 세력의 연합'이니 '개발 연합'이니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 붙는다.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지방자치가 유보되었던 30년간의 권위주의 시대에 지방자치의 부활을 그리고 그 이후에는 가능한 더 많은 지방분권화를 염원하고 지지해 온 민주 시민들과 학자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처럼 지방의 내부적 요인에 의해 빚어지는 문제들에 더하여 중앙-지방간 관계의 구조적 특성에 의해 비롯되는 문제들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앙정치에 의해 지방정치가 좌우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중앙 수준의 정당 공천이 당락에 중요한 요인이 되면서 '공천헌금' 비리 문제가 드러난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일반론적으로 보면 지방선거가 중앙수준 정치의 연계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 자체를 문제시 할 일은 아니다. 중앙수준의 국정운영에 대한 적절한 중간평가가 제도화되지 않은 경우에 지방선거가 그 기능을 일부 수행하는 경우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또한, 중앙수준의 국정운영에 의해 지방수준의 정부운영 방식과 시민들의 삶이 영향을 받는 정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와의 연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순기능적인 면이 적지 않다.

문제는 그 정도에 관한 것이다. 지방자치의 의의가 지방수준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지방정부를 운영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할 때,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처럼 전국 수준의 '바람 선거'에 의해 획일적인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그로 인해 거의 모든 지자체들의 의회가 집행부와 동일한 정당에 의해 '점거'된 것은 앞으로 4년간의 지방정부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면에서 적지 아니 우려스럽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4년간의 지방정부 운영에서 민주시민들의 적극적인 역할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한 예로써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선보인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중앙수준 정당정치의 풍향에 따라 지방수준의 정책 대결 양상이 왜소화되고, 선거결과에도 그다지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는 해도, 이번 매니페스토 선거 운동은 후보자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공약을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한, 유권자들에게 선거에 있어서 공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비록 이번에 그것이 투표 행위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부터 매니페스토 운동을 비롯한 지방수준의 시민운동이 해야 할 일 가운데에는 선거 결과에 따라 새롭게 출범한 지자체장들이 과연 선거과정에서 그들이 제시했던 공약을 얼마나 내실 있게 실천하는지 여부를 계속 모니터링하여 그 결과를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쉽게 그리고 상세하게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권자들의 '주민소환' 운동을 유도해 나가는 일이다.

정용덕(鄭用德)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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