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성적관리 '허술'…'치맛바람'도 한몫(?)

입력 2006-07-12 09:40:06

"이런 구조에서라면 고교 단위의 평가결과를 믿어주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11일 대구 모 일반계고 내신성적 조작사건을 접한 지역 한 대학 교수는 내신 중심 2008학년도 대입제도를 교육부의 의도대로 시행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못 박았다.

교육부는 내신성적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학업 성적관리 종합대책' 지침을 전국 교육청에 내리고 고교의 평가관리 체계를 투명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들어서는 고교 시험 문항 인터넷 공개 등의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대구에서 발생한 내신성적 조작사건은 교육부의 자신감이 헛구호에 그쳤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교 또는 교사 개인 차원의 성적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해 내신 중심 입시제도가 오히려 광범위한 부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것.

조작 파문의 당사자인 A교사의 행적을 살펴보면 고교의 성적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A교사는 "진학실에 수합된 답안지를 들춰보다 수정액으로 고쳐진 답안지 1장이 우연히 눈에 띄었고, 혹시나 싶어 더 찾다보니 2장을 더 발견하게 됐다."며 "오답처리될 것이 걱정돼 수업을 마치고 다시 전산실로 내려가 새 답안지에 옮겨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14개반 400여 장의 답안지 중 '우연히 눈에 띄었다.'는 답안지의 주인은 공교롭게도 이 학교 문·이과에서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들.

한 문제 차이로 석차가 변동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학부모회 간부의 자녀라는 사실 등으로 미뤄 이번 조작은 입시 지상주의와 치맛바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추정까지 가능케 하고 있다.

그가 학교 전산실에서 학생 3명의 답안지를 새 답안지에 옮겨 적는 과정에서는 아무런 감시나 제지도 없었다. 정보부장 교사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오히려 고쳐쓴 답안지 감독란에 찍도록 자신의 도장까지 내줬다.

학교 규정대로라면 이런 경우 해당 학생은 물론 시험 감독 교사까지 반드시 입회한 가운데 학생이 직접 답안지에 옮겨 적도록 하고 있다.

답안지를 옮겨 쓸 경우 원본 답안지는 별도 서류철에 보관해야 하지만 A교사는 임의대로 답안지를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A교사는 "순간적으로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육청 감사 담당자는 "A교사는 20년간 교직에 몸 담아오면서 3학년 담임 경력도 많은데 이런 기본 절차를 몰랐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이번 사건은 익명의 제보가 없었더라면 교육청과 학교차원에서는 결코 밝혀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거꾸로 평가에 대한 고교의 감시·감독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고 있다.

시 교육청은 "학교평가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엄정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내신성적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지, 불신만 가중시킬지 시교육청과 학교의 처리과정이 주목된다. 최병고기자 cgb@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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