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농촌체험] (15)봉화 비나리녹색농촌체험마을

입력 2006-06-29 07:58:45

월드컵 응원에 밤을 지샜나. 버스에 오르는 얼굴들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열심히 싸워준 태극전사들처럼 눈빛만은 반짝인다.

안동 시내를 벗어나자 그림같은 풍경들이 이어진다. "이야~아." 깜박 졸던 이들의 입에서도 거푸 탄성이 쏟아진다. 자연이 빚어낸 조화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미리 마중을 나온 김신현(52) 비나리 녹색농촌체험마을 대표를 따라 좁은 산길을 올라간 언덕 위에는 예쁜 집 한 채가 반갑게 맞는다. 마을주민들이 고심 끝에 만든 명물, '비나리 산골미술관'이다.

이 곳을 지키는 이는 귀농 8년째인 송성일(44)·유준화(43) 씨 부부와 5년째인 이용성(40) 씨. "이젠 직업이 농사꾼이죠. 아이 건강때문에 왔는데 잘한 것 같습니다. 농삿일도 차츰 나아지고 있고요."

미술을 전공한 이씨의 지도로 솟대 만들기가 시작된다. 마을의 평안을 위해 그 옛날 솟대를 세웠던 것처럼 저마다 간절한 소원을 가득 담아 공을 들인다. 모두들 어설픈 솜씨로 '모범답안' 베끼기에 바쁜데 권창영(35) 씨는 나름대로 창의성을 뽐낸다. 하지만 세상에! 무슨 솟대에 사다리며 나무 울타리람!

미술관 마당 한 구석에 서 있는 녹슨 펌프도 오늘 제대로 주인을 만난다. 이 신기하고도 낯선 장난감은 고사리손들의 손길에 저 깊은 바닥에서 울컥울컥 반가움을 토해낸다. '저 차가운 물에 등목 한 번이면 에어컨도 필요없는데.....' 요즘 아이들이 그 맛을 알리야 없지만.

이용성(40) 씨의 집 텃밭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름도 정겹다. '숨 쉬는 산책길'. 낙엽송숲을 개간한 고추밭에는 지렁이가 꿈틀댄다. 살아있는 땅이다. 하유나(8) 유림(6) 자매가 못들어가겠다며 버티는 사이 그래도 남자라고 윤형종(7) 군은 제 키만한 명아주 한 포기를 뽑아들고 자랑이다. "제가 원래 힘이 좀 세요." "그래, 형종이는 상일꾼이니 저녁에 밥 두 그릇 먹어라. 하하하"

땅거미가 깔린 이나리강변에는 어김없이 즐거운 캠프파이어가 시작된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화려한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는 사이 삼겹살은 지글지글 화로 위에서 맛있게 익어간다. 즉석 노래자랑대회에 이상원(11), 김세형(11), 김영훈(11) '개구쟁이 3총사'는 꽁무니를 내뺀다. 벌써 사춘기인가. 덕분에 대상은 '철 모르는 코흘리개' 권대원(6) 군의 차지다.

서늘한 아침 산골바람에 풋잠을 깬다. 아이들은 벌써 강가에 모여 한바탕 난리다. 윤미정(11·여), 함석경(11), 김소연(8·여)이는 아예 수영복을 입고 물 속으로 뛰어들고 김진솔(12)·김고은(11) 자매는 물수제비뜨기에 열심이다.

후다닥 아침 식사를 해치우고 청량산 산행에 나선다. 경사가 꽤 급하다. 여기저기에서 숨 넘어간다며 엄살들이다. 이 와중에 팔자가 제일 좋은 건 김채원(3·여). 아빠 김세희(38) 씨 등에 업혀 산천을 즐기는 모습이 모두들 부러운 눈치다. '좋은 것 많이 보고 예쁘게 자라렴.'

천년고찰, 청량사의 바람은 폐부 깊은 곳의 찌든 때마저 씻어내는 듯하다. 이선향(42·여) 씨는 무슨 기도를 그리 열심히 드리는 지 법당을 떠나지 못하고 박선희(35·여) 씨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가슴 가득 담느라 차마 발을 떼지 못한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찾은 이나리강에는 은빛 비늘들이 유혹한다. 아침에 내걸어둔 파리 낚싯줄에도 벌써 '대물'(?)들이 퍼득이고 들쳐든 반두에도 뭔가가 꼼지락거린다. "야, 여기 봐. 걸려들었어. 그런데 이건 퉁가리네. 쏘이면 아프니까 만지지는 마." 물이끼에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져도 웃음소리는 강변에 메아리친다.

"그런데 요놈들아, 오늘 밤에 청량산 산신령님이 꿈에 나타날까 무섭지않니?"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봉화·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