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부터 18일까지 공산갤러리에서 은퇴 기념 '루나(Luna)'전을 여는 정은기(65) 영남대 미술학부 교수는 요즘 하루 일과가 너무나 바쁘다. 3년 만에 다시 여는 개인전 준비 때문이다. 2년 동안 '전시회 한 번 하자'고 얘기한 것을 미루다 보니 어느덧 오는 8월 정년 퇴임과 맞물려 기념전이 돼버렸다.
정 교수는 이번 전시작품 재료를 선정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광산을 직접 찾아 돌아다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집트산 천연석 '앨러베스터'. 형식을 달리해보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존의 어둡고 불투명한 대리석과는 달리 앨러베스터는 '설화석고(雪花石膏)'라는 이름처럼 분홍과 연녹색, 상아 등의 여러 가지 부드러운 색채와 빛을 띄고 있다. 옅은 색채의 덩어리 안으로 다른 색의 줄무늬가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새겨진 이 재료를 가지고 정 교수는 까다로운 질감과 색채의 특성을 존중해 작업했다.
이번 전시작들은 또한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로 제작됐다. "프로로서 더 많은 미술 애호가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다. 세련된 좌대까지 사용한 작품은 앨러베스터 특유의 질감과 어우러져 쉽게 접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뽐낸다. 전등으로 제작한 작품은 전등빛이 은은한 색감을 더욱 신비롭게 비쳐준다.
이를 통해 정 교수는 그 동안 꾸준히 다뤄온 달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달의 여신 '루나'는 곧 여성과 모성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온 주체,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온 주력인 모성애의 끈질긴 힘을 담아내고 있다.
전시회보다 정 교수를 더욱 바쁘게 하는 것은 조각공원을 꾸미는 일이다. 정 교수는 8년 전 작업장을 짓고 나서부터 대지 1천여 평의 땅에 잔디와 나무를 심고 조각 작품을 한두 점씩 설치하고 있다. 20여 점의 조각과 연못이 푸른 잔디와 나무 등과 어우러진 칠곡 동명 남원리의 골짜기 터는 어느덧 여느 자치단체의 공원보다 훨씬 멋진 모습으로 바뀌어있다.
지금도 정 교수는 매일 잔디를 깎고 작업장에서 작품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느라 짧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 교수는 이런 생활에 대해 "20대 때부터 품었던 꿈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건축도 예술'이라고 들었는데 실제 보니깐 아니더라. 그래서 '내가 한 번 선례를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었는데 8년 전에야 겨우 시작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개인이 남길 만한 문화재는 잘 없다."는 정 교수는 자신이 손수 가꾸고 있는 이 정원이 "개인이 가꾸고 개발해 영원한 문화유산으로 남기"를 소망했다.
정 교수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택도 '예술적'이다. 지역에 가장 어울리는 김천의 화강암 통석을 옮겨다 쌓았다. 언젠가 미술관으로 활용할 생각으로 1·2층 모두를 한옥의 일자형 구조를 본따 지었다. 내부는 방과 거실로 단순화했고 1층의 중앙도 뚫려있다. "아들이나 손자가 살지 않을 때는 미술관으로 용도 변경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넓은 테라스에서는 소규모 공원도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이 시설과 함께 팔공산 일대를 "예술 기행(Art Tour) 상품으로 개발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장을 돌아보는 문화상품을 개발하면 외부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제조각회의 참석차 방문한 보스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정 교수는 자신처럼 "개인이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선례가 없다 보니 법령도 정비가 안돼 불편한 점도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행정적 지원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인식을 조금만 바꾸면 가능하다."는 정 교수는 퇴임 뒤 "예술이 숨쉬는 공간을 만들고, 안해봤던 재료로 작업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선례를 만들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