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박은 연령, 체온, 심리적 상태, 체질 및 질병 등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지만 보통 사람의 경우 1분에 60-80회로 하루 평균 10만회 정도 뛴다고 합니다. 이 맥박이 영구적으로 멈출 때 우리는 그 개체가 죽음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지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처리하는 단어가 하루 평균 10만 단어 정도 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신문이나 책을 읽고, 길거리의 간판을 읽고, TV를 시청하면서 맥박수 만큼의 단어를 해독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실을 견주어 볼 때, 사람은 맥박에 의해 생명현상을 유지하듯이 언어에 의한 호흡으로 사회적 삶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맥박이 고르지 못하거나 약하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없듯이, 언어에 의한 호흡이 순조롭지 못 할 때 그 사람의 사회적 관계가 자유스럽지 못할 뿐 아니라 하는 일의 성취 수준 또한 낮을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 가정에서 그 부모가 사용하는 어법과 관련이 깊다는 영국의 연구사례가 있습니다. 하류층 가정의 부모가 사용하는 말을 보면 대개 '저리 가!', '공부 해!', '닥쳐!' 등과 같이 지극히 원색적이며 제한된 어법을 사용하는 반면, 상류층 가정의 부모는 같은 말이라도 '내가 지금 몹시 바쁘니 저쪽에 가 있으면 안 되겠니?', '나는 네가 공부하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보기가 좋아.',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네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니.'라는 식으로 매우 정련된 어법을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학교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대개 정련된 어법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하류층 아이들의 귀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흡사 외국어처럼 들려, 머리 속에서 다시 번역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다보니 성적이 올라갈 수 없다는 논리지요.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 확률이 점점 낮아져 '용천에서 용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개천'이나 '용천'을, 그 사람이 호흡하는 언어의 바다 또는 언어로 색인되는 일상적 삶의 문화로 해석해 봅니다. 요즘 양극화 문제가 사회적 화두입니다. 그런데 빈민들을 대상으로 희망 교육프로그램을 창설한 미국 작가 얼 쇼리스에 의하면, 열악한 환경과 불운의 포위망에 둘러싸인 사람들도 우선 달콤한 빵보다는 삶의 성찰을 위한 인문학을 배우고 싶어 한다지요. 자신이 발목을 담그고 있는 개천을 용천으로 바꾸려는 이들의 삶의 의지가 눈물겹습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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