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 지혜가 오는 길 - 문답

입력 2006-04-29 07:25:07

지구상에 60억명의 사람들이 와글거리며 살고 있다. 희한한 것이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있어도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다.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관상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책에도 관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름 하여 책상(冊象)이다. 강압적으로 주장을 강요하는 형, 부드럽고도 애절하게 호소하는 책, 앞뒤가 빈 틈 없이 논리가 정연한 책, 어눌하고 세련되지 않았는데도 왠지 마음이 끌리는 유형, 구토하듯이 온갖 지식을 쏟아내어 늘어놓는 책,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거부감이 들 정도로 신선한 책 등등.....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책들은 저자가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1차원적이며 일방적 지식의 전달방식이다. 화자인 저자의 얘기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청자인 독자와의 역동적 주고받음이란 측면이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역동적 주고받음' 이란 형식적 차원의 지혜를 의미한다. 지혜는 언어, 정보, 지식의 형태로 직접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는 과정 또는 전후 맥락과 여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득되는 것이다. 그래서 묻는 사람, 답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 이 죽은 지면위에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문답식 책의 형식적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질문은 진정성이 없으면 할 수 없고 진정성은 생명의 본질이다. 무엇을 왜 궁금해 하는 것인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무엇인가를 향하여 바라보고 소망하는 것,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그곳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 없다면 무엇이라도 궁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성경의 상당부분, 대부분의 불경이 문답형식을 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질문이 서지 않은 곳에 던져지는 답은 마치 집은 집이되 사람이 살지 않는 세트장의 집과도 같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집은 집이 아니다. 삭풍 벌판에 한사람이 서있다. 비록 나뭇잎 하나에 의지하여 서있다 해도 그곳이 사람의 집이다. 아름다운 논리의 기와, 풍부한 지식의 사랑방이 없어도 생명이 넘실대는 사람의 집이다. 질문하는 사람의 집이다. 질문하는 자신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없다. 또 질문하지 않는 사람에게 스승은 보일 수가 없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황보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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