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국왕, 국민에 권력이양 선언

입력 2006-04-22 08:20:26

갸넨드라 네팔 국왕이 21일 주권을 돌려주겠다고 선언,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사실상 무릎을 꿇었다.

이는 지난해 2월1일 정부를 해산하면서 절대왕권을 거머쥔 지 14개월, 야권이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며 전국 총파업에 돌입한 지 16일 만이다.

갸넨드라 국왕은 이날 국영 TV와 라디오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서 "네팔 왕국의 행정 권력은 오늘부터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7개 주요 정당들에게 조속한 시일내 새 총리를 추천해주도록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리 녹화된 연설에서 "빠른 시일내 각종 선거를 통해 정통성 있는 기구들이 가동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의미있는 실천이 확보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 나라에 평화와 질서가 회복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왕은 또 "현 각료협의회는 새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만 운영될 것"이라며 "우리는 다당제 민주주의와 입헌국주국을 약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네팔의회당 등 야권은 국왕의 이런 제안이 "충분하지 않다"며 시위를 계속할 뜻을 밝혀 당분간은 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의회당 대변인인 크리슈나 프라사드 시타울라는 "국왕은 우리의 요구사항에 대한 로드맵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총선과 관련해 자신의 어젠다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연합의 미넨드라 지잘 대변인도 "그의 메시지는 충분치 않다"면서 "왕은 패배했지만 이는 완전한 패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왕은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기존에 제안한 총선 일정을 고집하고 있다"면서 "제헌의회 구성에 관한 선거나 독재체제의 완전한 종식이 아니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야권의 이런 반응은 갸넨드라 국왕이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고 헌법개정을 위한 특별의회의 구성을 반영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됐다.

갸넨드라는 지난해 2월 공산반군에 대한 대처미흡 등을 이유로 '친위 쿠데타'를 통해 정부를 전격 해산하면서 전권을 장악했다.

이에 미국과 영국, 인도 등 전통적 우방들은 군사원조를 중단하면서 다당제 민 주화로의 회귀 압력을 가했지만, 갸넨드라는 이를 거부하는 대신 중국과 파키스탄 등과의 유대강화 전략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쿠데타 이후 14개월이 지나도록 상황이 전혀 호전되지 않자 7개 야당으 로 구성된 야권연합은 공산반군의 지지까지 등에 업고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전국 에서 총공세를 취했다.

그동안 시위과정에서 유혈충돌로 14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한 가운데 야권이 20일부터 국민 총궐기에 나서자 국왕은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사살명령까지 내리는 등 강경책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들은 정부의 위협을 무시한 채 이틀간 수십만명이 카트만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등 시위 강도를 높이면서 국왕을 압박했다.

또 유엔과 미국 국제사회도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압력의 수위를 높인데다 종주국 격인 인도가 특사를 보내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던짐에 따라 갸넨드라 국왕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태였다.

한편 인도 정부와 유럽연합은 갸넨드라 국왕의 권력이양 연설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조치가 네팔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네팔 야권은 22일 국왕의 발표와 관련해 긴급 회동을 갖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해 나갈 방침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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